[박시형의 비틀어보기]

[청년칼럼=우달] 지난 22일, 휴가 중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복귀한 부사관에 대한 전역 조치가 결정됐다. 육군 관계자는 해당 인원이 받은 '3급 심신장애'가 전역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심신장애 3급은 군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명백한 사유이며, 전역 판정을 피하는 게 오히려 이치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에 A 하사는 "소수자들이 국가 지키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복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며 끝까지 다투겠다고 밝혔다.

위 사건을 두고 여론이 꽤 날이 서있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오르면서, 그들을 무턱대고 두둔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주장들이 많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17일에는 네팔 안나푸르나 데우랄리(해발 3천 230m) 인근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하산하던 충남교육청 해외교육봉사단 교사 4명이 실종됐다. 6m가량 앞서가던 선두그룹 4명이 사라지자, 나머지 교사와 등반객들은 다시 산장으로 돌아갔고, 다음날 구조헬기에 의해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현지에서는 수색작업 중에 있지만, 잇따른 기상악화로 전체적인 진행에는 난항을 겪고 있다.

다른 사건, 다른 기사지만 어딘가 많이 닮아 있다. 그저 다수의 횡포라고 치부하기에는 각각의 주장들에 모두 논리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저 댓글들에 공감한 수많은 사람들 중 자신이 해당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공동체를 위해 고분고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은 여생을 국가와 사회를 원망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위의 주장들은 분명 논의가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처럼 나만 아니면 돼 같은 식은 곤란하다.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사회는 유치원이 아니고, 우리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나에게 내가 소중하듯 남에게도 그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떼놓고 보면 주변의 불행에 가슴 아파할 줄 알고, 슬픔에 공감할 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일 텐데, 온라인에 뭉쳐 놓으면 어쩌면 이토록 냉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어느 애완견의 잔인한 죽음에도 함께 분노할 줄 아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이것이 하나의 모순이라면 아무래도 그 원인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문제의 줄기를 따라가보았다. 일단락된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최근 들어 세계적인 PC(Political Correctness : 정치적 올바름)추세에 따라 보수 성향이 짙은 우리나라에서도, 물 밑에 있던 다양한 가치들이 급격히 조명받기 시작했다. 다문화 가정,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난민, 동물보호 등 현재까지 이렇다 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던 분야들이다.
한편 우리는 어려서부터 늘 소수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배웠고, 다수의 횡포는 위험한 것이라고, 더 많은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정작 왜 그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렇게까지 차별받는 소수가 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한다면 누구나 상대적 약자로서의 경험은 있겠지만, 그 또한 다수 속의 소수자로서 얕은 경험에 불과하다. 술 한잔하며 시원하게 욕 한번 하고 나면 풀리는 정도의 것들이다.
​우리는 언제나 정치적으로 유리한 다수에 끌리고, 자신을 그곳에 소속시켜 충분한 안정을 누리기를 원한다. 원초적인 생존 본능이다. 그 탓에 우리는 우리 이외의 것들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기 힘들다. 그게 아니어도 살면서 고민해야할 것들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부의 격차는 커져가고, 남보다 하나를 더 갖기엔 점점 힘든 세상이 되었다. 물질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졌을지라도 정신적으로는 더욱 각박해진 셈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개방적인 사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정말 많은 가치들이 공론화되고 있고, 우리는 우리라는 집단 내의 소수에 대해서는 제법 너그러워졌다. 그 필요성은 다들 충분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우리 밖에 있는 소수들이다. 우리는 이들에 대해서는 전에 없이 혹독해졌다.

그건 아마도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아들인 것에 대한 부작용일 것이다.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 아래, 우리는 지금껏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부단히 수용해왔다. 그래서 이만한 사회 기조라도 만들어진 거니까. 가야 할 길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말이다. 필자는 우리가 지양해야하는 것이라 귀에 딱지 앉도록 배웠던, 무시무시한 다수의 횡포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조금 지쳤을 뿐이다. 걱정해야 할 것은 다수의 횡포가 아니라 다수가 느끼는 피로감이다. 실망할 것은 전혀 없다. 그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다시 여유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될 일이다.

 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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