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청년칼럼=김우성] 담배 피우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지독한 연기를 내뿜어서?

대기를 오염시켜서?

아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다.

'흡연자는 나쁜 사람, 나를 포함한 비흡연자는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꽤 오랜 시간 살아왔다. 그러다 20대 초반, 군 입대한 뒤로는 생각이 달라졌다. 입대 후 흡연을 시작했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군대에 가보니 수많은 장병이 담배를 피웠다. 그들은 틈틈이 작고 흰 막대를 입에 물었다. 삼삼오오 모여 뿌연 연기를 내뿜던 그들 중에는 친형이나 다름없을 만큼 친한 선임도 있었다. 꾸준히 운동을 해 체력을 키우는 동기도 있었다. 훈련마다 실전처럼 진지하게 임하는 후임도 있었다. 그들은 군인으로서 만점짜리였다. 군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고요한 새벽,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한겨울 별을 보며 잠들 때, 그들이 내 손에 쥐어주던 핫팩과 초코파이는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정녕 나쁜 사람일까?’

Ⓒ픽사베이

60만 국군 장병 중 상당수가 담배 피운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흡연자들이 지키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지독한 연기를 내뿜긴 하지만, 내 얼굴에 직접적으로 연기를 내뱉지 않는 한,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그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에게 고마워하는 게 정상이지 싶다.

비단 군인뿐인가. 흡연자는 군대 말고도 사회 곳곳에 있다.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누구는 장시간 운전을 하고, 물품을 만들어내고, 학생을 가르치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여러 흡연자들로부터 지식을 전수받고, 그들이 지은 건물에서 생활하고, 그들이 운행하는 차량을 이용해왔다. 오늘날 내가 두 발 뻗고 잠을 자기까지 지나온 일거수일투족을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흡연자에게 신세를 졌을지 헤아릴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확고한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을 비하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행위였는지 새삼 깨닫는다.

흡연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나와 ‘같고 다름’을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단정지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일요일에 교회 가지 않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못 박지는 않았던가. 내가 SNS를 잘 하지 않기에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일상을 수시로 남에게 알리는 사람, 내가 컴퓨터 게임을 안 한다는 이유로 PC방에서 밤새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았던가.

그들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부끄럽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고 다른 유형의 사람도 있게 마련인데, 왜 그리도 나와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을까. 그저 다를 뿐, 잘못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타인을 더 이상 예전처럼 마냥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흡연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후, 여러 분야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 한다. 절도나 폭행처럼 실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다르게 사는 사람을 무조건 나쁘다고 규정하는 습관과는 이제 안녕이다.

성별, 나이, 종교, 출신 학교, 거주 지역, 취미, 생활 습관 등 따지고 보면 온전히 나와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에게 빚지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을 욕한다는 게 웬 말인가? 내가 사는 방식이 최선도, 유일한 정답도 아니니 더 이상 그들의 삶을 깎아내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이냐는 물음에 이제 누구라고 답해야 할까?

어쩌면 터무니없는 흑백논리로 남을 함부로 평가한 내가 가장 나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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