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당 영화당]

[청년칼럼=숲속의 참치 ] 만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만약을 가정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만약 내가 이 일을 지금이 아니라 예전에 했더라면 어떠했을지와 같은 물음이다. 그런데 어쩌면 영화에도 같은 물음을 던져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스크린의 안쪽만을 보는지, 아니면 스크린의 틀(Frame)을 포함한 전체를 볼 것인지에 따라 영화를 읽는 맥락은 달라진다. 스크린의 안쪽만을 본다면 영화는 영화의 시간으로만 남는다. 하지만 스크린의 틀을 포함해 전체를 본다면 그 영화를 보는 자신의 시간이 중요해진다.

쉽게 말해 영화를 볼 때는 어느 정도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영화에만 몰입하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라는 게 아니라, 그 주변이 영화관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얘기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시야가 넓어져서 같은 것이라도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 말을 영화관람에 적용하면 위에서 말했듯이 영화 자체만이 아니라 스크린이라는 환경을 보게 되는 셈이다. 이 말이 두루뭉술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미술관 벽에 걸린 작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픽사베이

미술관 벽에 걸린 미술작품은 대게 액자 안에 있지만, 설치 미술과 같은 것은 특정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또는, 액자 안에 있더라도 그게 어느 벽에 걸리는지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미술관 벽에 있던 작품을 내 방 벽에 가져다 놓으면 미술관에 있던 것만큼 고급지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말해주는 건, 미술 작품에서 액자의 역할은 그에 몸담은 작품을 어떠한 형태로 규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상황, 맥락만이 그에 형태를 부여할 뿐이다.

비슷하게,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를 성인이 되어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 난다. 또는 같은 영화를 삶이 지쳤을 때와 기뻤을 때에 각각 보게 되면, 같은 영화임에도 전혀 다른 맥락으로 보이곤 한다. 사랑할 때와 사랑하지 않을 때, 결혼하기 전과 결혼하고 난 후에 보는 영화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점은, 나를 규정하는 것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변했다는 것만으로 자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영화와 자신이 맺는 관계는,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영화가 몸담은 시간과 우리가 몸담은 시간 사이에 얽힌다. 예컨대 이는 시간과의 관계이다. 영화의 시간을 규정하는 게 프레임 안의 러닝타임이라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건 프레임 안의 삶이다. 그러니 우리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 꼭 그 안의 내용물에만 손을 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물을 담은 프레임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서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변화를 꾀하는 삶의 어느 순간에는 꼭 자신에게만 모든 짐을 지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놓인 상황이 어떠한지에 따라서도 일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까, 삶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되지 않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는 굳이 안 되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는 프레임을 온전히 유지한 채로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분명 전보다는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았을 때 차이가 있는 것은 그만한 노력을 했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예전 그대로인데,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고 나자 우리가 걸린 벽이 변하면서 그 위에 걸린 우리가 다르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을 어느 정도는 긍정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어떠한 외형이 있고 그게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게 받아들여질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면 된다.

숲속의참치

영화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와 대화할 수 없습니다. 나쁜 영화 좋은 영화는 없고, 살아가는 영화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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