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성의 변두리 시선]

[청년칼럼=지은성] 미지의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지면서 인류는 전대미문의 공황에 빠진다. 미증유의 재난에 구성원 간 불신과 이기주의는 극에 달하고, 이로 인해 주인공은 이중고를 치른다. 전염병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한 영화의 뻔한 시놉시스면 좋으련만, 모든 게 실제 상황이다. 세계는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괴물 앞에 서 있다. 우리나라도 2월 3일 현재 15명의 확진자를 내면서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더니 생경한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동시대에 벌어지는 일이 맞나 싶을 뿐이다. 중국은 바이러스의 발원지 우한을 봉쇄했는데, 인근 주민들은 자경대까지 조직해 이를 단속하고 있다. 이동 제한 자체는 WHO도 예시한 방역 대책 중 하나로, 합리적 결정이다. 문제는 우한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이다. 자경대는 도로에 콘크리트 벽을 쌓고, 일부는 엽총으로 무장까지 한 채 경계를 서고 있다. 인터뷰하는 음성에는 증오가 섞여 들린다. 그들은 우한 시민들을 바이러스의 한 종류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픽사베이

상상 속 이야기라고 믿고 싶은 일은 우리 주변에도 있다. 지금 인터넷은 중국인에 대한 혐오 댓글 천지다. 중국인을 해충에 비유하며 박멸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국이니, 그들을 내쫓자는 말은 고상하게까지 들릴 정도다. 오프라인이라고 상황이 다르진 않다. 중국인 출입금지를 내 건 점포들이 늘고 있고, 모 대학 앞에서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바이러스에 자신보다 한 발이라도 가까이 선 사람은 배제와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행태는 중국 현지나 우리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더욱이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현대인은 과거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있다. 2015년 타계한 세계적 석학 울리히 벡이 현대를 ‘위험사회’로 정의한 이유다. 이처럼 문제와 해결능력 사이에 비대칭에 놓이면 인간은 으레 징크스를 찾는다. 문제를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해법도 자기 편한 대로 내리는 것이다. 기존 질서로는 도저히 해석도, 해결도 할 수 없는 난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다.

문제는 징크스가 대개 정치적이라는 데 있다. 근세 유럽인은 유대인을 흑사병의 원인으로 여겼고,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은 재일조선인을 혼란의 주동자로 지목했다. 모두 징크스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을 통해 구성원의 절망과 무기력을 해소하는 정치적 도구로 악용된 사건들이다. 작금의 상황도 찬찬히 한번 돌아보자. 우한 시민 혹은 재한중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과연 떳떳한가?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 이들을 별도로 검역하고, 필요에 따라 격리할 수는 있지만 지금 우리의 정서를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징크스는 마음의 일시적인 위안을 줄 뿐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더구나 구성원 간에 편을 가르고 증오를 매개로 작동하는 징크스라면 외려 부작용만 초래한다. 당장 현 상황에서 중국인만을 떼어 놓고 보는 사태수습은 현실성이 없다. 우리의 법과 WHO를 비롯한 국제 규약부터가 특정 국적에 대한 일괄적 출입금지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또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동아시아 포비아’가 성행한다고 한다. 혐오성 징크스가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모양새다. 동아시아를 도매금으로 묶어 생각하는 저들이 이번에는 동아시아를 내쫓자고 몰아세운다면 우리는 무슨 수로 항변할 텐가. 편 가르고 상대를 배척하는 일은 우리가 먼저 시작한 방식 아닌가. 중국 탓하기가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인 이유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극복하는 기제로 소통을 제시했다. 소통의 근간은 신뢰와 협력이다. 위험 앞에서 구성원은 반목과 혐오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현재 전염병은 출현 경로부터 전파속도까지 우리의 통제 밖이다. 위험이 거세면 거셀수록 우리는 더 강한 신뢰와 협력이 필요하다. 비록 인간은 나약하지만, 그 유대는 질기고 억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