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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독일어 수업[김연수의 따뜻한 생각]
김연수 | 승인 2020.02.10 08:38

[청년칼럼=김연수] 대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학기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신입생 시절은 이미 빛이 바랜 지 오래였다. 내게 있어 2019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도 더 스펙을 쌓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는 해였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나는 정말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이미 도가 텄다고 생각한 수강 신청을 잘 해낸 뒤 수강 정정에서 살짝 미끄러지는 바람에 전혀 연고가 없는 독일어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정말 기가 막혔지만 하루빨리 외국어 강의 수를 채워 졸업해야 했기에 일단 열심히 공부해보자고 다짐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지난 학기 룸메이트였던 A가 같은 수업을 들어 공부, 시험 준비 등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인 교수님이 진행하는 독어 회화 수업인 만큼 수업 시간마다 직접 독일어를 발음해야 했는데 이건 정말 고역이었다. 독일학과 전공 수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어느 정도 독일어에 능통했고 나는 독일어 움라우트조차 모르는 초심자였다. 자기소개도 옆 사람 도움 없이 못 하는 내게 교수님은 끝없이 질문했다. 나는 교수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럴 때마다 A가 질문을 해석해주고 답변하는 걸 도와줬다. 그런데 A는 어느 날부터인가 더 이상 그럴 수 없다고 선언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픽사베이

A는 교수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는데 수업이 끝난 후 그녀는 교수님께 불려가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A, 그녀의 기회를 뺏지 마.”

아마도 교수님은 A가 나를 도와주는 걸 알아채고 이런 식으로라면 독일어 실력이 늘지 않으니 이제 그러지 말라고 언질을 준 것 같았다. 그 덕분에 나는 매 수업 시간마다 해당한 진도의 단어를 외우고 본문 내용을 번역기로 돌려가며 예습을 했다. 문법, 철자를 몰라서 가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참고하기도 했다. 남들은 토익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마지막 학기에 나는 난생처음 해보는 독일어 공부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독일어 수업을 들으러 갈 때가 가장 마음이 편안했다. 어린 시절부터 전형적인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달고 살며 늘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노력해서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만큼 잘 해내지 못했을 때의 박탈감이 컸다. 그래서 시작하기도 전에 ‘잘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본 독일어 수업에서 나는 다른 학과 학생이므로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게 당연했다. 교수님도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도 모두 그걸 알면서도 날 미워하거나 질타하지 않았다. 나로 인해 수업 분위기를 망치게 될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어떻게 하면 독일어 분리 동사를 외우기 쉬운 지 조언해주는 친구들도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교수님은 너희는 한국인이니까 너희가 독일어를 못 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아주 열심히 틀린 독일어 발음을 교정해주셨다.

학기가 끝날 때쯤 나는 구두로 보는 단어 시험에 자원해서 앞으로 나갔다. 교수님과 1:1로 영어 단어는 독일어로 독일어는 영어로 동의어, 반의어를 묻고 답했다. 중간에 틀리기도 하고 교수님의 발음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대학 생활 중 가장 보람찬 시험이었다. 난 지난 4년간 꾸준한 성실함으로 강의실을 지켜왔다. 너무 못하지도, 주목을 받을 정도로 잘하지도 않으려 애쓰면서 말이다. 눈에 띄게 잘하는 학생이 되었을 시 작은 실수나 오답에도 많은 수군거림이 따른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독일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난 그렇게 적당한 사람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실패를 최소화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삶은 아주 지루하고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그걸 알면서도 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오랜 시간 두려워했다. 그리고 변화나 성장보다는 안주와 안정을 택했다. ‘조금 못해도 괜찮다, 상관없다’는 걸 직접 느껴보니 앞서 걱정했던 모든 것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곧 사회인으로서 내디딜 첫걸음에는 자잘한 스펙보다 실패,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일 자세가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약 3개월 동안의 독일어 수업은 꽤 ‘괜찮은 연습’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시작한 2020년에는 쟁쟁한 독일학과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재수강을 면한 나 자신을 기억하며 어떤 도전이든 두 팔 벌려 환영해보려 한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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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ide040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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