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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뒤편[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이호준 | 승인 2020.02.10 09:34

[논객칼럼=이호준]

1,

가까운 후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직 50대이니, 100세 시대를 부르짖는 요즘으로 보면 ‘요절(夭折)’이라고 할 만 합니다. 여러 죽음을 지켜보며 살아왔지만, 유난히 가슴 저미는 이별이 있습니다. 이번에 떠난 후배의 죽음도 그랬습니다. 그는 자식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밤무대를 전전했습니다. 그렇게 일해서도 학비를 충분히 보내줄 수 없으니까 낮에는 신용카드 배달을 했습니다. 잠은 늘 부족했고 몸은 피곤에 절어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내와 이별했습니다. 그의 가족사를 구구절절 옮길 수는 없지만, 아내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받았을 고통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 질곡 속에서도 그는 늘 웃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본인이 밥값을 내지 못해 안달할 정도로 관계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큰 아이는 외국에서 그럭저럭 적응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작은 아이는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았습니다. 그가 지고 걷는 삶의 무게는 늘 그렇게 악순환 속에 있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 건 몇 달 전이었습니다. 다른 후배 하나가 그가 간암 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을 해줬습니다.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괜찮다고 되레 저를 위로했습니다. 목소리가 워낙 희망적이어서 제가 괜스레 걱정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전화를 할 때마다 술도 끊고 체중도 빠지니 좋다며 껄껄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가 며칠 못 넘길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건 얼마 전이었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서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손을 잡고 “OO야! 형 왔어, 형 왔어.” 몇 번 말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동도 없던 그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영혼이 저를 알아본 걸까요? 그리고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흐려진 시선 속으로 그가 남긴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 성장기에 자주 봤던 아이들입니다. 속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표정에서 가슴 저미는 슬픔을 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학비를 보내주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다가 쓰러진 아버지에 대한 회한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그렇지…. 섭섭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더욱 슬펐던 건, 발병 후 세상과 이별하기까지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입원할 형편이 안됐던 그는 혼자 살던 방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떠나고 자식들은 멀리 있고…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저도 가끔 전화는 했지만 밝은 목소리만 믿고 직접 도울 생각은 안 했으니, 결국 그의 쓸쓸한 죽음을 방치한 죄인이었습니다. 뒤늦은 회한이 가슴을 때렸습니다. 이 시대, 한 사내의 고독한 죽음이 어찌 그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요.

자료사진@논객닷컴

2,

제가 머무는 사찰의 사무실 창으로 난데없는 소음이 넘어왔습니다. 최소 60~70대는 될 것 같은 분들이 심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여러 남녀가 한 남성을 공격하는 모양새입니다.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용이 그대로 귀에 들어왔습니다. 상(喪)을 치른 뒤 절에서 재를 지내고 헤어지기 전에 정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부의금의 분배입니다. 공격하는 형제들(특히 여성 형제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의 주장에 따르면 맏상제가 장례식에서 받은 부의금을 틀어쥐고 나눠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맏상제도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습니다. 장례 과정에 그만한 비용이 들어갔다는 것이지요. 동생들의 공세에 차분차분 대답을 하다가 가끔 목소리를 높여 반격에 나섭니다.

“그럼, 들어온 부조를 전부 나눠달라는 거야?”

“그럼, 크든 적든 나눠주는 게 옳지.”

“비용을 계산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니까?”

“왜 남는 게 없어. 들어온 게 얼만데.”

“그럼 밥값이니 뭐니 내가 쓴 것도 다 따져서 걷어야겠네?“

으레 그렇듯, 그쯤 되니 목소리는 점차 올라가고 끝내 대화가 아닌 싸움이 되어버립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도는 없고 ‘내 돈’만 남아있는 것이지요. 형제 중 하나가 선언하듯 소리칩니다.

“그래! 이제 형제고 뭐고 만날 일도 없고, 이 자리서 다 끝내버려.”

여기서부터는 상대방 말을 듣지는 않고 각자 할 말만 하는 중구난방이 돼버립니다. 간간이 울음 섞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더 이상은 듣기 민망해서 귀를 막아버리고 싶습니다. 부모 묫자리의 풀이 마르기도 전에 재산 상속문제로 이전투구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조의금 분배로 싸우는 현장을 대면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돈이라는 괴물 앞에서 육친의 죽음은 더 이상 슬프거나 경건하지 않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시대의 풍속도였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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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sagang58@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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