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청년칼럼=김동진]

그런 시대가 왔다

운전하다 가끔 공기청정 기능을 쓸 때가 있다. 에어컨이 같이 작동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많이 사용했는데, 날이 차가워지면서 그 기능을 거의 쓰지 않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청정기능을 써보려고 운전 중에 눈으로 버튼을 살펴보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공기청정 버튼을 누르면 작동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 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버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버튼을 오래 눌러야 그 기능이 작동된다는 것이 생각났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했었는데 그 사이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러시아 출신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하루를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평론가가 알고, 사흘 안 하면 관객이 안다는 명언을 남겼다. 수십 년을 연주해온 정상급의 피아니스트도 연습을 게을리 하면 실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픽사베이

나 역시 하루에 단 몇 줄이라도, 무엇에 관한 것이든 꾸준히 글을 쓰자고 다짐하지만 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쓰지 않고 머리 속으로만 소재와 구성을 생각하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 첫 문장을 시작하는 순간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할 지 막막한 마음이 든다. 분명 머리 속에서는 결말까지 완벽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예전에 써 놓은 글을 볼때면 어떻게 이런 생각과 표현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객관적으로 훌륭한 글이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 쓰는 것도 며칠 쉬면 다시 예전의 감각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매일 꾸준히 쓰면 당연히 감각을 찾는데 시간이 덜 걸린다.

습관은 그만큼 무섭다. 생각해보면 일상에서의 작은 습관들도 그렇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마다 각자의 언어 습관이 있다. 이를테면 출근하는 동료에게 꼭 외모와 관련해서 첫마디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옷 색깔이 어떻고 머리 스타일이 어떻고 피부가 어떻고 등등. 주로 칭찬의 말들이고 상대방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많지만 매일 그러면 왠지 영혼 없는 칭찬같아 듣기 거북할 때가 있다. 듣다가 싫은 내색이라도 하면 상대방은 '자기는 진심으로 칭찬한 건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기분 나빠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왜 칭찬의 말들이 다 외모와 관련된 것인지 그게 불편하다는 것인데, 그냥 까칠한 사람이 돼버리는 것이다.

가수 출신 DJ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한 게스트의 노래를 듣고 농담조로 "나는 이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한다. 농담이란 거 알지만, 상투적으로 으레 흔히 써왔던 말이란 걸 다 알지만 실제 농부들이 그 말을 들으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엄연히 동성끼리 사랑하고 결혼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남자 연예인끼리 우정을 얘기하면 “둘이 사귀어요?”, “남자 둘이서 무슨 재미로 만나요?” 같은 질문을 농담이랍시고 가볍게 던지고, 다들 웃고 넘긴다. 그러나 그 농담이 결코 재밌지 않고 그냥 웃어 넘길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 아닌데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다면 안 해야 되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습관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변할 수 있다. 또 그래야만 하는 시대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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