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논객칼럼=김인철]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 Radde.

유례없이 따듯한 겨울이라더니, 결국 일이 났습니다. 유례없는 별일이 일어났습니다. 뭔 일이기에 호들갑을 떠느냐고요? 모처럼 상큼하고 기분 좋은 일입니다. 바로 봄이 지척에 왔음을 알리는 전령(傳令)이 도착했습니다. 춘삼월까지 아직 보름 이상 남았는데, 이미 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화신(花信)이 왔습니다. 황금색 ‘봄의 전령’ 복수초가 예년에 비해 20일 이상 일찍 피어나 샛노란 꽃술을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입춘 하루 전인 지난 2월 3일 서울 인근에 복수초가 폈다는 꽃 동무의 말에 강화도 고려산을 찾았습니다. 산골짝은 꽁꽁 얼었고, 겨울철 으레 그렇듯 깡마른 갈잎만 무성합니다. 갑자기 역주행하듯 영하로 곤두박질한 날씨로 사위는 더 을씨년스럽습니다. 게다가 “뭘 찾느냐?”라고 묻는 주민에게 “혹 꽃 봤냐?”라고 되묻자, “40년 가까이 지켜봤는데 일러야 2월 말에나 핀다.”는 답만 되돌아옵니다.

헛걸음인가 하는 순간, 켜켜이 쌓인 낙엽 사이 곳곳에 동그랗게 벌어진 노란색 꽃송이가 제법 여럿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너 시간 쪼인 아침 햇볕 덕에 막 달아오른 듯한 모습입니다. 허 참, 서울 인근 산에도 2월 초에 자생 복수초가 피다니….

짙은 갈색의 낙엽 사이에서 노란 꽃송이를 동그랗게 벌린 개복수초. 입춘 하루 전인 2월 3일 인천시 강화도 고려산에서 만났다. 유례없이 따듯한 날씨 탓에 예년에 비해 20일 이상 일찍 폈다는 게 인근 주민의 말이다. Ⓒ김인철
 Ⓒ김인철

복수초가 중부 지역에서 입춘 전에 피는 건 이례적이지만, 당초 원단화(元旦花)니 원일초(元日草)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걸 생각하면 별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원단·원일은 곧 새해 첫날이니, 복수초의 별칭 안에 이미 ‘새해 첫날 피는 꽃’이란 뜻이 담겼다고 봐야지요. 일본에서는 새해 인사 때 복수초를 선물하며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한다고 하니, 정초에 피는 꽃이라는 인식은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강원도 동해시 냉천공원 산비탈에서 제주도보다도 이른 1월 초부터 복수초가 피는 것으로 유명한데, 석회암 동굴 지대의 따듯한 지형이 그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제주도와 완도수목원 등 따듯한 바닷바람이 부는 남녘에서도 1월 중순이면 복수초가 황금색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전남 여수 금오산 기슭에 핀 개복수초(사진)와, 경기도 안산시 서해에 떠 있는 작은 섬 풍도의 개복수초(아래 사진). 둘 다 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며, 꽃과 함께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개복수초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김인철
 Ⓒ김인철

이렇듯 ‘가장 일찍 피어나 기나긴 숨결로 봄을 여는’ 복수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핍니다. 다만 꽃 모양과 잎, 가지 등의 작은 차이로 인해 서너 종으로 나뉘는데, 제주도 숲속에서 자생하는 종은 잎이 가늘게 갈라진다고 해서 세(細)복수초로 부릅니다. 남부와 서해 도서 지역에서 피는 복수초는 경기·강원 등지에서 만나는 복수초에 비해 꽃의 크기가 갑절 이상 크고 화려합니다. 게다가 꽃이 피는 것과 동시에 잎도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종전에는 이를 가지복수초로 분류해왔는데, 최근 개복수초가 더 적확한 이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북부 지역에서 2월 말 이후에서나 피기 시작하는 것을 복수초, 그중 꽃의 크기가 아주 작은 것을 애기복수초로 따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둘 다 잎이 나기 전 꽃이 먼저 핍니다.

경기도 연천 지장산에 핀 복수초. 3월 초순 이후에나 개화하는데, 개복수초에 비해 꽃 크기가 작고 단정한 데다, 잎이 꽃보다 한 참 뒤에 나오는 중·북부 지방 자생 복수초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김인철

 Ⓒ김인철

이른 곳에선 1월 초에 개복수초가 피기 시작해 경기·강원 깊은 산에선 5월 초까지도 복수초가 피니, 서너 종의 복수초가 무려 5개월 가까이 피고 지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복수초를 한반도 봄 야생화의 대명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얼음과 눈 속에서 핀다고 해서 얼음새꽃이니 눈색이꽃이란 예쁜 우리말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설련(雪蓮)이란 한자 이름도 있습니다. 활짝 핀 복수초는 형광물질을 내뿜듯 그 기세가 강렬한데, 실제 활짝 핀 꽃 속의 온도가 50cm 떨어진 주변보다 7도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만난 설중(雪中) 복수초. 얼음새꽃, 눈색이꽃이란 순수 우리말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