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참말 전송]

[논객칼럼=서석화] 균열이었다. 아니다. 그것으론 부족하다. 분명히 틈이 생기는 정도는 훨씬 넘어 있었다. 몇 날 며칠 아무 때나 떠오르고 떠올릴 때마다 촉감 좋은 이불을 덮는 것처럼 따뜻해졌다. 살아오는 동안 온몸에 고랑을 파듯 함부로 파헤쳐졌던 시간에 고운 흙이 덮여 편편해졌다. 어디선가 생명력 강한 씨앗이라도 날아온다면 어쩌면 곱디고운 야생화 한 송이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건 균열 정도가 아니라 진동이요 지진이라고 해야 맞다.

양준일 ©롯데홈쇼핑 화면 캡쳐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였다. 나는 외부로부터 받는 충격엔 온갖 기능성을 다 장착한 견고한 머리, 가죽 같은 가슴이 되었다고 믿고 살았다. 불변의 아군이자 지지자요 내 추종자이기도 한 어머니가 무남독녀인 ‘나를 두고’ 죽었다는 건, 세상이 내게 줄 수 있는 극한의 충격이요 용서 불가의 배신이었다. 어떻게 둘러대고 어떻게 설득해도 어머니를 데려간 세상은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것과 같았다. 남들은 내 나이 쉰 중반까지 어머니가 계셨으니 그만하면 복 받은 거라고 어릴 때 외웠던 국민교육헌장 읊듯 말해댔지만, 그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들의 책임 없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내가 어머니를 붙들고 늘어졌던 십육 년, 어머니가 병석에 계셨던 십육 년이, 무남독녀인 내게 허락도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갑자기 어머니를 데려간 것으로 끝난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무심코 내쉬는 숨 한번처럼 사소하든, 창문에 테이핑을 해야 할 만큼 굉장한 속도로 몰아치는 폭우 같은 것이든, 나를 지배할 무엇도 나를 떠난 외부엔 없다는 슬픈 자신감이 찾아왔다.

외면과 단절과 냉소와 의심과 포기에다 기대 박멸... 과 교환된 자신감! 든든하지도 용기가 생기지도 않는 눕기 일보 직전의 저체중 자신감! 세상은 타자들의 집합체였다. 세상에 와 제일 처음 만났고,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가장 오래 내 그림자의 길이를 눈에 담은 ‘엄마’도 결국은 자신의 시간을 살다가 ‘날 두고’ 갔지 않은가. 나는 온갖 약속과 맹세와 믿음과 도리가 도덕책과 위인전의 최면과 세뇌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어머니의 죽음으로 깨달았다. 그러자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것에도 나는 정오의 시곗바늘처럼 꼿꼿할 수 있었다. 슬픈 자신감은 그래서 움켜쥘 수 있었다.

나를 웃게 할 일도, 나를 울게 할 일도, 나를 날게 할 일도, 나를 주저앉게 할 일도, 결국은 내가 만들고 내가 느끼다가 내가 버릴 수 있을 뿐, 세상은 내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는 더 철저히 나 자신에게 열중했다.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자청해서 외로움을 불렀고, 외부로부터 주고받은 감정의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 내가 나를 파헤쳤다. 그러자 조금씩 고요해졌다. 그러면서 세상이 내게 타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내가 세상의 타자로 입장이 전도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다행’이라는 단어를 매일 일기장에 썼다. 기대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나와는 무관했다. 당연히 세상엔 아군도 적군도 없어졌다. 세상으로부터 보이는 것도, 내가 세상에 보여줄 것도 없는 시간은 늘 정오거나 자정이었다. 그만큼 내 외로움은 휘지도 눕지도 못하고 늘 직립이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세상에 초침 분침 시침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미소가 지어지고 어깨가 세 시쯤으로 기울어진다. 가슴이 뛰며 여덟 시경으로 허리도 휜다. 기분이 좋다. 설렌다. 세상으로부터 어느 날, 불쑥, 난데없이, 우리 앞에 훅! 하고 그 남자가 나타났다!

슈가맨 시간 여행자 양준일! 시간 여행자라는 부연이 무릎을 치게 하는 사람! 시간이 사람을 지나간 게 아니라, 사람이 시간을 쓰고 살았음을 보여주는 그가 왔다. 그래서 우리가 그를 소환한 게 아니라 그가 여행했던 시간에 우리를 소환시킨 사람!

우리 나이로 쉰이 넘었다는 그는 선이 고운 남자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탄이 절로 나오게 유지가 잘 된 몸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단박에 읽혔다. 어느 한곳도 비탈지거나 울퉁불퉁하게 만들지 않고 곧게 닦아온 그의 마음과 시간! 참 곱게 살아왔구나. 참 선하게 살고 있구나. 그는 참 난사람이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인정과 수긍으로 그를 맞았다.  

우리가 미안하네 안타깝네 하며 불러 보고 있는 삼십 년과 그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삼십 년은 달랐다. 그건 아름다움이었다. 시대가 내몰았던 그의 삼십 년 시간이 그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건 원망과 분노가 아니었다. 자신을 거부한 시대와 사람들에게 그가 내민 건 투쟁과 방어의 창과 방패가 아니었다. 펄펄 살아 뛰는 이십 대의 자신은 외면해 놓고 쉰이 넘은 이제야 다시 사랑이라는 슬로건을 안타깝게 펼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떨었다. 감동으로! 울었다. 고맙다고!

여러분의 사랑이 제 상상보다 훨씬 깊고 높아요.

하마터면 나도 울 뻔했다.

 

이 고마운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지금, 저를 불러준 여러분의 사랑이 저의 과거를 지워버리는 게 아니고, 과거의 순간순간에 가치를 매겨 주셨어요.

하마터면 방송국으로 전화해 그의 연락처를 조를 뻔했다. 세상에! 자신을 몰라준 것도 부족해 불필요한 짐 치우듯 내몬 사람들을 원망하기는커녕, 지금 불러준 것으로도 지난 삼십 년에 가치가 매겨졌다니!

 

자신을 좋아하면 왕따가 되고, 곡을 주는 사람이 없어 서툴게 자신이 직접 쓴 가사로 노래했지만, 결국은 이 나라 이 국민들이 삼십 년 형기를 만들어 내몬 우리의 가수.

사회자가 물었다.

사주지도 않을 음반은 내서 뭐하냐며 한국을 떠나라던 사람들에게 많이 서운했을 것 같아요.

어느 때보다도 깊고 조용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가 대답했다.

 

안 사줘도, 안 들어줘도, 내가 내 음반 내고 망할 수 있는 권리, 나에게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망할 수 있는 권리라니! 당신들이 그렇게 해서 내가 망한 게 아니라, 망하는 것도 내가 갖고 있는 권리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니!

나는 결국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두 발을 있는 힘껏 굴리며 박수를 쳤다.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로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통쾌한 열기가 퍼졌다. 시원했다. 그의 깨끗한 자존감이 더도 덜도 아닌 그대로 읽혔다. 세상 전부를 타자로 몰지 않고도 저리도 꼿꼿하고 당찰 수 있구나.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방기하지 않고 꼿꼿하고 당차게 자신의 주인일 수 있는 그에게 경외감마저 느껴졌다. 온 세상을 타자로 몰며 그 안에서 헐거웠던 내 시간이 생면부지의 어떤 사람으로 인해 팽팽하게 조여지는 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최근에 책을 출간한 뒤 판매부수와 평판에 어쩔 수 없이 날을 세워왔던 지난한 내 시간이 일시에 날아갔다. 아! 머리에 탄산수가 한 트럭쯤 부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슈가맨 양준일이 있는 세상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소환당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십사 년만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사년만이라고 했고, 처음 보는 누군가는 육십 년만이라고도 했다.

나는 나를 열어 진짜 내 목소리로 하나하나 불렀다. 뼈마디 사이사이 핏줄 사이사이 쑤셔 박아 놓았던 그때그때의 내가 제 나이를 찾아 줄을 서고 있었다.

세상이 굉장히 멋있어졌다. 

 서석화

  시인, 소설가 /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회원/한국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 <종이 슬리퍼>/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이별과 이별할 때>/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 (전 2권)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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