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논객칼럼=안희진]  해가 바뀌었다고 모두들 기뻐한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새해가 되었다고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이 나라에 할 일이 태산 같고 우리의 갈 길도 아득히 먼데 말이다. 아마도 내게 할 힘이 남아 있고, 할 일이 있으며, 내 앞에 남은 날도 있고, 남은 일도 있으니 새날과 새해를 기뻐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슬람 수피(회교의 신비주의)의 성자로 알려진 루미(Rumi)의 이야기다.어느 날 한 여인이 소년을 데리고 와서 루미에게 말했다.

“루미 선생님, 이 아이가 설탕을 너무 많이 먹는데 아무리 타일러도 영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루미 선생님에게 가보자고 했더니 선생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듣겠다고 해서 왔습니다.”

루미 선생은 이 소년을 한참동안 주목하여 보더니 “3주일 후에 다시 오너라”고 말했다. 당황한 여인은 ‘먹지 말라고 한마디만 하면 될 걸 왜 3주일인가? 훌륭하신 선생님이 이렇게 사소한 일을 3주일씩이나 미루다니......’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3주일 후에 여인은 소년을 데리고 다시 루미 선생을 찾았다. 그런데 루미 선생은 또다시 “3주일만 더 기다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인이 “왜 3주일을 또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약간 짜증스럽게 물었더니 루미는 “글쎄, 3주일만 더 기다리라니까. 3주일 후에 다시 오너라”고 딱 잘라 말했다. 3주일 후 그들이 다시 찾아갔을 때 루미는 소년에게 “자, 지금부터는 설탕을 먹지 말도록 하여라”고 말했고 소년은 “루미 선생님 잘 알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절대로 설탕을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여인은 못내 궁금하여 “루미 선생님,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데 대체 왜 6주일씩이나 걸렸습니까?”라고 물었다. 루미가 대답했다. “사실은 나도 설탕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이 아이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거짓이다. 그래서 나는 3주일동안 설탕을 끊으려고 애를 써봤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래서 다시 3주일을 더 시도해 본 것이다. 이제 나는 성공했다. 이제는 설탕을 끊을 수 있었다. 자, 비로소 나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루미 선생님의 말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른 지도자상이 아닐까.

그런데 보시라, 정권 심장부나 국회나 행정각부에서 사회단체, 일반기업, 학교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많은 정치지도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신의 허물을 고치기는커녕 묵묵히 일하는 일반국민들에게 "틀렸다""고쳐야 한다"고 질책하면서 마치 청렴과 결백의 상징처럼 목에 힘을 주고 있지 않은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정부가 되겠다고 외치면서 내로남불식의 위선과 불법과 특혜를 일삼으며 시민과 소외계층을 외면하는 정부,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함께하는 민생국회가 되겠다고 외치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픽사베이

자신들은 밥먹듯 범법을 하면서 국민들에게는 일벌백계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 않는가. 자신들은 아무 것도 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이에게는 버려야 한다고 하며, 자기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다른 이에게는 정직하라고 말한다. 다른 이에 앞서 내가 먼저 고쳐서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위정자와 지도층이 먼저 좋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장애인이 좋아지려면 장애인단체와 기관이 변해야 하며, 관장과 이사장이 반성하여 좋아져야 한다. 학생을 탓하고 벌하기 전에 선생님이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자신들은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다가 담배를 비벼 끄며, ‘자원과 환경보호’을 외쳐서야 되겠는가. 자신들은 장애인고용은커녕 무시하고 깔보면서 때만 되면 ‘장애인고용을 하지 않는 기업과 나라는 반성하라’고 동네방네 떠들며 촉구하는 신문과 방송이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진실로 바른 나의 개혁, 우리의 개혁없이 나라와 사회의 개혁이 가능키나 하겠느냔 말이다.

1945년 해방을 앞두고 29세로 요절한 시인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하고 노래했다. 이럴 정도까지는 못되더라도 내가 사회정의에 대해,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 그리고 공동향유를 외칠 수 있으려면 나부터 ‘장애인은 인간이다’라는 기본명제에 대해 가슴깊이 통회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신년을 맞은, 매순간마다 우리의 각오와 자세는 통회와 반성이다.

남보다 앞서 고칠 것은 용감하게 고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겠다. 그리고 당당하게 현장에 서겠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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