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청년칼럼=허승화] 대부분의 인간은 늙지 않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늙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느낌을 준다. 관절이 안 좋아지고, 머리숱이 적어지고 주름살이 늘고 전체적으로 쇠약해진다는 이미지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쭉 젊음을 무기로 발전해온 종족이었고, 늙는다는 것은 생명을 가진 인간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이니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도 싫을 수밖에.

반면 젊음은 항상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생기있고 밝고 통통 튀고 명랑한 느낌을 준다. 젊음을 칭하는 청춘이라는 명사에는 젊음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담겨있다. 사랑은 늘 내리사랑이기 마련이고 새로운 문화는 젊고 힘이 넘치는 인간으로부터 태어난다.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상식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를 어쩐다? 이렇게 좋은 젊음은 멸종 위기다. 우리 사회 전체가 고령화의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저출산 고령화의 전 세계 선두로 달려 나가고 있는 한국은 고령화로 유명한 옆 나라 일본보다 아이를 안 낳는다. 미래를 보자면, 암담 그 자체다. 마치 코로나 19 감염증처럼 증상만을 치료할 뿐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는 할 수가 없다. 백신이 없는 저출산 쇼크 치료법은 너도 나도 모른다.

탑골공원의 노인들@오피니언타임스

안티 에이징

위기는 이미 도래했지만 우리는 이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어? 얼마 전에 아웃렛 나가보니까 애들 천지던데?’ ‘우리 동네에는 애들 많은데?’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아이들이 도시권에 모여 살기 때문에 많아 보이는 것뿐이다. 당장 인구 소멸 위기지역으로 지정된 지역들은 한국 지도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 국가의 안티 에이징을 위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다. 그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누군가 나한테 아이를 낳을 거냐고 묻는다면? 나도 안 낳겠다고 답하겠다. 그리고 나의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가임 연령대 여성들의 인생계획 속에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다양한 대답을 들어볼 수 있다. 정말 다양해서 다 옮기지도 못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는 하나다. 삶이 더 나아질 거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결혼부터 기피하는 사람도 많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도 딩크족으로 남으려는 것은 단순히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충이라도 원인을 분석해보자. 1980년대 초중반부터, 백말띠라고 불리며 여아 출산을 꺼리던 1990년까지는 산아 제한과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여아 낙태가 횡행했다. 자연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여아들은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해당 나이의 여성 수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미래는 그때부터 예견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저출산을 몰고 올 세대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났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과 그 친구들이 입 모아 이야기하듯 세상은 아직도 남성 중심이었다. 열심히 산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살기 힘들었다. 맘충으로 불렸고, 워킹맘들은 피해의식 속에서 산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80년대생까지는 비교적 더 많이 아이를 낳기는 했다.

90년대 초중반에 수도권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조건이 또 달랐다. 그들은 잠깐 다시 찾아온 베이비붐 세대로서, 경제 위기 도래 이후 좁아진 취업의 문을 뚫어야 하는 엄청난 경쟁률의 세대였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았다. 학교는 미어터졌다. 한 학년에 반이 10개가 넘어갔다. 늘 정원을 꽉 채운 반에서 주입식 수업을 들어야 했다. 커보니 좁은 자취방에서 다닥다닥 붙은 옆방의 소음을 들으며 잠을 설쳤다. 이미 80년대 생이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문을 닫아 둔 경우가 많았기에 문과를 나온 90년대생의 취업률은 곤두박질쳤다. 열심히 살았지만 삶은 고단하고 나아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더 살아서 뭐하나, 이번 생은 망했어가 입버릇인 집단적 우울감에 빠진 상태에서 출산을 논하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지난해 90년대생(연간 출생아 수 70만 명 이상이던 91-95년에 태어난 여성들)에게 저출산의 미래가 달렸다는 논지의 기사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흔한 90년대 생’이 어떻게 출산을 꿈꿀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기에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것은 어쩌면 본능이 시킨 일일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노 키즈존 등으로 대표되는 아동 혐오, 남성 여성 간의 성별 싸움, 틀딱충이라 불리는 노인 혐오 등 혐오가 넘쳐난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지방과 서울 간의 출산율 차이, 공무원 도시인 세종시와 다른 시도 간의 출산율 차이를 들여다보면 어떤 요소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경제적 안정과 육아휴직이 보장된 직업(고용안정), 적당한 넓이를 가진 적당한 가격의 집(주거안정)이 되는 한 낳을 인간은 낳는다. 그러나 삶의 기본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면 낳을 인간도 못 낳는다. 삶이 나아져야 아이도 낳을 수 있다. 아이를 낳아 물려주고 싶을 만큼 좋은 것이 없는 한 우리는 아이를 낳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이나 스웨덴, 신혼부부에게 4천만 원을 대출해준 헝가리의 예처럼, 어떤 식으로든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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