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논객칼럼=이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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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만 빼고(투표하자)’라는 어느 신문 칼럼이 여론시장을 요란하게 하고 있다. 필자는 그중 ‘촛불정권을 자임하면서도 국민의 열망보다 정권의 이해에 골몰했다’는 지적에 유의했다.

어느 집권당이라도 ‘정권의 이해에 골몰하지 않은 정당‘은 없을 것이다. 모법답안인데도 부정의한 것으로 정의된다. 그것이 국민의 열망과 함께 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독선적으로 나가는 부분도 있을 수 있는데, 정치란 그런 것들을 조율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버럭 화를 내고 고발한다고까지 나섰다가 철회했다. 호들갑을 떨만큼 임펙트 있는 칼럼이냐는 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데도, 이처럼 화를 내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보다 더 험악한 글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수 매체의 논조를 보면 집권 여당을 향해 거의 증오와 저주와 파멸의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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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만 빼고(투표하자)’라는 칼럼에 대응해 필자는 “민주당, 과반 의석을 확보하라”고 응원하고 싶다. 욕심으로라면 개헌선까지 확보했으면 좋겠다. 선의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방해세력이 준동하고 있는 이때, 차질없이 나라를 리셋팅해 개혁을 완성하려면 수의 우세가 필수불가결하다. 개혁을 방해하는 지뢰밭이 도처에 깔려있고, 그래서 이것들을 제거하려면 숫자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현실 인식이 참으로 안이하다. 한국의 언론 지형을 너무 모르는 것같다. 만약에 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같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의원을 꾸어주는 따위의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반신불수가 될 정도로 보수 언론으로부터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만 빼고(투표하자)'라는 칼럼을 쓴 필자와 신문사 편집인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진영과 상관없이 욕먹을 짓인데, 보수매체야말로 얼마나 융단폭격을 퍼부을 호재를 만났나.

그것은 또 민주당의 자기부정이다. 민주당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는 표현의 자유 확대와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자는 데 있다고 본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정권시절, 언론 재갈 물리기와 길들이기, 그런 탄압에 대칭적으로 언론 자유를 강조한 당이 그동안 야당의 길을 걸어왔던 민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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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관한 한 민주당의 우군은 사실상 없다. 한국의 주력 보수언론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언론 탄압과 떡밥 던져주기, 예컨대 탄압하며 향응 제공, 특혜와 특권 부여, 광고 지원 등의 채찍과 떡밥에 잘 길들여져 왔다. 이런 수혜 때문에 구질서에 익숙하고, 구권력에 협조적이었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도 그 틀을 유지하고 있다. 맥락을 살펴보건대, 조국 사태에서 총대를 멘 것도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민주적 가치, 표현의 자유, 적폐 청산, 남북 화해와 협력에 기본 가치를 두어 국민적 지지를 받아 마침내 정권교체의 꿈을 실현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길은 험난했다. 김대중·노무현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도 개혁의 동력을 제대로 살릴 수 없었다. 구세력의 방해와 저항, 그중 보수 언론의 집요한 발목잡기로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현재의 문재인 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구 정권의 천문학적 비리, 온갖 인사 부정, 폭압적인 권력 유지, 군림의 태도에도 애써 눈감던 주력 보수언론이 민주당 정권의 사소한 실수, ‘껌값’도 안되는 비리 혐의도 가차없이 밟아버리는 현실을 우리는 보아왔다.

문재인 정권은 이들 언론에 이익을 나눠줄 스킬과 언론인들과 사적 인연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세상의 마이너리티로서 늘 광야에 서있었기 때문에 고기 한점 살 능력도 못되었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 때문에 혜택을 베풀만한 환경도 만들지 못했다.

특권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젖어있는 언론인들은 기존의 관행에 비추어 이들로부터 대접받지 못한 것을 대단히 불쾌해 했을 법하다. 구 정권과 비교하니 더욱 배신감이 든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런 것으로 대립각을 세운다. 정작 언론자유 확장을 위해 노력한 정권을 조롱하고 야유한다. 그들의 활동 지평을 넓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멱살을 잡는다.

이 시간 현재 보수 매체의 지면은 문 정권 공격 일변도다. 편파 왜곡은 물론 가짜 뉴스까지도 퍼나른다. 실패한 정권으로 몰아가기 위해 경제위기를 부각하고, 정치적으로 무능하며, 불통 정권이라고 비난한다. 그런 가운데 국민과의 이간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 보도 행태에서도 그것은 여실히 드러났다. 세계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보수 매체에게는 서툴고 어설프기만 하다. 까실까실하게 쏘아붙이고, 어떻게든 흠을 잡아 패대기질 치려고 한다. 이는 당연히 보수야당에게 반사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런 현실을 민주당이 모른다면 바보고, 알아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어리석다. 그런데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칼럼에 독오른 뱀처럼 바짝 머리를 쳐들어 화를 내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꼬리를 내렸다. 실수가 나오기만을 바라는 세력에게 역공의 빌미만 제공하고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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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거 풍토는 국리민복과 미래의 이상과 가치를 제시하고 표를 얻는 거창한 정치행위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팔을 비틀어 꼼짝못하게 패대기쳐놓고 표를 가져오는 퍼포먼스가 하나의 주된 선거 전략이 되었다. 약점을 털어 조져대는 폭력적 선거 풍토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그만큼 치열하다. 정치적 라이벌이 아니라 쏴죽여야 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풍토가 되었다.

여기에 언론이 선봉에 나선다. 주력 보수언론이 완장 차고 다니며 냄새나는 구석구석을 뒤진다. 그것은 감시견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선별적으로 누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선택적 정의, 선택적 보도다.

그동안 이익을 함께 해온 보수야당엔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고, ‘개혁세력’이라는 문재인과 민주당에 대해선 도끼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그중 디테일의 무기로 덤벼든다. ‘인상 정치’ ‘이미지 정치’ ‘증오 정치’로 끌고 가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갈등 증폭적이고, 대결적인 데 초점을 맞춰 가독성과 클릭 수를 올리지만, 특정 정치세력에게 혜택을 주는 이중 효과를 노린다. 극도의 상업주의와 내 편, 네 편으로 편갈라 자기 이익에 부합되는 세력에게 표를 몰아주려는 사실상의 ‘선거운동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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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디테일이 선거판을 오도한 사례는 적지 않다. 정동영 발언이 대표적이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17대 총선을 20일 앞두고 젊은이를 상대로 한 강연에서 “한 신문기사를 인용하면, 이번에 하는 투표가 인생 투표이며, 늙은이 투표에 인생 맡기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 투표하라고 한다”며 젊은이가 투표장으로 나가라는 취지로 독려했다.

여기서 '한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이라는 말은 생략되고 "정동영이 늙은이들을 투표장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으로 둔갑해 대한노인회의 정계 은퇴 요구 시위로부터 당시 야당과 보수 언론이 들고 일어나 그는 결국 비례대표 후보에서 사퇴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 사단으로 열린우리당은 당시 국회 의석 20-30석을 날려버렸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었다. 디테일 하나가 이런 결과를 자초했다. 그 표적이 보수야당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었음은 물론이다.

사실 그 발언은 한겨레신문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너 자신의 청춘을 위해 투표하라>‘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었다. 어설픈 레토릭 하나가 언론의 대중조작에 어떻게 이용되는가를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런 디테일 선거의 전형은 또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3형제의 이권 개입 여부를 가지고 당시 보수언론은 “쓰리 홍 비리 백화점” 또는 “홍 트리오 부패 시리즈”란 타이틀로 총선 과정 내내 집중적으로 까발린 보도가 있었다.

냉정히 따져보자. 민정당ᐧ민자당ᐧ신한국당으로 이어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 그 시절 집권당의 구조 비리가 수천억대에 이르렀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주력 보수 언론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범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대하게 보아넘겼다. 언론의 사명이라는 ‘watch dog(감시견)’ 개념은 사라지고 카르텔을 형성해 협조자로 나선 분위기였다. 그 결과 IMF 관리체제를 가져왔을 것이다.

‘쓰리 홍’의 비리 혐의는 전 정권의 그것에 비해 깜냥도 안되는 것이지만, 이렇게 뭇매를 맞고 그로기 상태가 되더니 김대중의 레임덕은 가속화되었다.

언론은 범죄의 경중이나 부정의 경중을 편의적으로 재단한다. 미운 놈은 1만원 훔쳤어도 특수강도가 되고, 1000억-2000억 훔친 놈은 애써 묵살되거나 외면된다. 이익을 같이 하냐, 안하냐에 따라 보도의 기준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음험한 언론의 숨은 의도를 국민은 잘 모른다. 언론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뒤에 숨어서 ‘watch dog’ 역할을 한다고 권력에 맞서는 용기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속성을 잘 모르는 국민은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자신을 보위하는 공격용 지면공간이 드넓게 펼쳐져있으니 공격하고 싶은 정권에 엄청난 물량공세로 폭탄을 퍼부으면 국민은 알게 모르게 거기에 순치되거나 세뇌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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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의 폭압성에는 침묵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에 충실한 민주정권에 대해서는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마구 물어뜯는 풍경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간신히 정권교체를 이뤄 연명하기도 벅찬 힘 약한 권력에 대해서는 ‘권력 감시’라는 이름으로 인정사정 볼것없이 파헤쳐 짓뭉개버리는 광경을 노무현에 이어 지금도 살펴볼 수 있다.

문재인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검찰, 언론, 사법부, 정치계,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잡아 개혁의 동력을 살리고 있는가. 정권의 능력 부족과 거부세력의 저항 때문에 개혁은 지체되고, 국민은 피로증에 싸여간다. 문 정권 내부적으로도 지리멸렬 상태가 되어가는 것같다. 그것은 보수세력이 바라는 방향이다. 그리고 이번 4.15 총선에서 확실한 반격의 정점을 찍을 것 같다.

예전보다 지금 언론환경이 나아졌다고 한다. 페이스북, 일인방송, 인터넷 매체 등 대항 매체가 생겨서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는 맞고 아홉은 틀린 ‘자위의 레토릭’이다. 보수 매체의 일방적 물량공세와 종편까지 가세하는 정치선전 선동을 이겨낸다고? 24시간 주구장창 쏟아내는 비난인데 끄떡없다고? 잔 매에 장사 없고, 이슬비에 옷이 젖지 않을 수 있다고?

지금 집권 여당은 언론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 보수 매체의 집중적인 폭격 아래서는 숨조차 쉬기 어려운 구조다. 사소한 실수 하나라도 저질러선 안되는 이유다. 그런데 마음에 안든다고 칼럼 기고자를 고발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스스로 내세운 민주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셈이 되었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의도가 불순하고 필자의 정치적 이력상 납득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다. 대변인이 나와서 성명 하나 내거나, 가볍게 묵살하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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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외치는 개혁을 완수하는 길은 많은 의석의 확보다. 의석으로 개혁을 실천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그래서 4.15 총선이 중요하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보수 세력은 디테일을 적극 활용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음모적 행태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역사와 전통은 이미 축적되어 있다. 검찰 또한 집권당에 유리한 국면이지 않다.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저지하는 행태는 벌써부터 여러 공간에서 튀어나왔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이 설친다고 똑같이 설치다가는 한 방에 갈 수 있다. 더 이상 실수하지 마라.

답답하고 지난한 일이지만, 그래도 정직하게 말하면 높은 수준의 도덕주의와 뼈를 깎는 자기 절제와 정의감과 청렴성, 그런 가운데 언론과 검찰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법적·제도적 틀을 짜야 한다. 그것은 입법 권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용기를 잃지 말되 실수하지 마라.

 

   이계홍

   현 세종포스트 주필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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