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기의 시사 톱아보기]

[청년칼럼=정준기]

1.

최근 대한민국이 시끄럽습니다. ‘코로나 19’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우한 폐렴’ 등 기관과 정당별 제각각인 이름으로 불리는 유행병 때문입니다.

언론은 바이러스 전염병이 창궐한 이 시국을 ‘무분별한 중국인 혐오 정서’ 치환했습니다. 지난 1월 29일 모 신문이 보도한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해당 기사는 제목에서부터 발병지 중국 우한과 전혀 연관 없는 대림동을 특정하며 대림동 주민들을 잠재적 전염원처럼 암시했습니다. ‘전염병 공포’를 특정 집단에 관련지어 차별과 혐오를 심화시키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대림동 주민’을 콕 집어 “남성들이 가래침을 길바닥에 뱉는 경우”, “음식 대부분이 바깥에 진열”, “맨손으로 (음식을) 만지는 상인들” 등으로 묘사했습니다.

우선 기사 속 시민들이 한국 국적인지 중국 국적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중국 입국자라고 볼 수도 없는데 기사는 ‘발병 우려를 가진 중국인’으로 취급합니다. ‘2019 영등포구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대림1~3동에는 외국인 2만5천251명이 거주 중입니다. 서울시는 이들 절반 정도를 중국인으로 예상합니다. 대림동 전체 거주 인구는 약 14만 명입니다.

그리고 가래침을 뱉는 시민과 맨손으로 음식을 만지는 상인은 비단 대림동을 제외해도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음식을 바깥에 진열한 곳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울과 부산 그리고 제주도에서도 시민들은 가래침을 뱉고, 상인들은 음식을 바깥에 진열하고 맨손으로 만지곤 합니다.

압권은 기사 말미에 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중국인 또는 화교처럼 보이는 사람 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비율이 극히 낮았다”라고 언급합니다. 황당합니다. ‘중국인 또는 화교’처럼 이들의 국적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으니까 ‘나쁘다’라는 주장입니다. 국적조차 확인하지 않고 ‘중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 행보입니다. 해당 기사가 송출된 포털 사이트 댓글에는 ‘중국인 혐오’ 정서로 가득했습니다.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인권위원회가 지난 2019년 3월 20~22일 동안 성인 1,20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인식조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8%P입니다. 응답자 중 49.1%가 ‘언론이 혐오 표현을 조장하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응답은 11.3%에 불과했습니다. 상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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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펜은 칼보다 강하다'

많은 이들이 동의합니다. 칼끝은 한 사람만을 향하지만, 펜 끝은 집단을 겨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펜으로 행한 범죄가 칼로 저지른 범죄보다 ‘더 큰 잘못’이라 말하면 많은 이들이 머뭇거립니다. 특히 펜을 들고 있는 이들일수록 더욱더 그렇습니다.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펜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더 무거워야만 합니다. 그래서 ‘펜’은 하나의 특권입니다. 무겁고 신중하게 부려야 합니다.

언론이 대표적입니다. 언론은 대중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모든 언론 보도를 비판·선별할 수 있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본인 견해가 다수에 속하면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합니다. 하지만 소수에 속한다고 인식할 경우 우리는 소외되지 않기 위해 침묵합니다. 그 결과 다수 의견은 더욱 지배적인 주류 의견으로 떠오르고 소수 의견은 점점 침묵 속으로 사라집니다.

바로 세계적인 정치학자 노엘레 노이만(Elisabeth Neolle Neumann) 시카고대학 교수가 주장한 ‘침묵의 나선 이론’입니다. 연세대학교 이동귀 교수(심리학)는 침묵의 나선 이론을 “소수의견이 침묵되는 이유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인구학적·문화적 차이를 간과했지만, 언론과 미디어가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역동적이고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으로 설명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무분별한 중국인 혐오를 멈추자는 댓글은 ‘비추 폭탄’을 받고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등 포털 사이트 뉴스 기사 항목마다 중국인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으로 가득합니다. 혐오 댓글을 단 이들과 혐오 댓글에 ‘좋아요’를 누른 이들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언론은 어떤 책임이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뜻입니다.

차별과 혐오의 정서 위에 쓰인 기사보다는 보도윤리와 사실관계에 바탕이 된 기사를 읽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언론이 쥔 펜의 무게가 더 무거워야 합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기에 언론이 부리는 펜이 좋은 방향으로 향하길 바랍니다.

 정준기

 내 글에 취하지 않으려 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과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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