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의 하의 답장]

[청년칼럼=이하연]  비상사태다. 마스크, 손 소독제는 물론 약속까지 다들 사라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조심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단 한 달 전이다. 한 달 만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제 마스크는 피부처럼 느껴지고 김 서린 안경으로 제법 앞도 볼 줄 알게 됐다. 어쩌다 보니 호흡법에 신경을 쓰게 된다. 코로 천천히 하나 둘, 하나 둘…. 가다듬은 호흡만큼 행동반경도 좁아졌다. 외식과 만남을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0으로 수렴 중이다. 회사에서 원격근무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눈을 뜨고, 출퇴근을 하고, 눈을 감는다. 자유로운 팔다리를 가졌지만 어딘가 모르게 갑갑하다. 또, 불안하다.

'사랑의 안전일기'  코로나 예방캠페인 @사진 인추협

내가 살던 곳이 바뀌어서일까. 모든 감각이 온라인 세상을 향해 뻗어있다. 하루 온종일 뉴스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뉴스는 뉴스의 꼬리를 문다. 사실을 사실만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불안감은 증폭된다. 누군가 “오늘의 불안 농도는 70%입니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사실만큼의 불안만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놈은 얼마든지 마음속에서 몸집을 불릴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불안이 나를 잡아먹고도 성에 차지 않는지, 나 이상의 것을 요구할 때가 있다. 여기에 필요한 가장 쉬운 방법은 화살의 방향을 외부로 돌리는 것. 혐오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번 불타오른 혐오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 뉴스가 뉴스를 양산하듯 혐오도 빠른 속도로 혐오를 양산한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모든 스케줄이 꼬여버린 나 역시도 혐오가 담긴 언행을 하고 말았다. 죄책감에 일기를 쓰고 다짐하고, 다시 일기를 쓰고 다짐하고, 또 일기를 쓰고 다짐을 했다. 불안이 부른 참사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의심한다. 나도 감염된 것이 아닐까? 감염되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다녔을까? 내 동선이 만천 하에 공개되면 그 욕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삶의 의욕이 떨어졌는지 감정이 무뎌졌다. 기쁨과 슬픔의 어딘가를 방황하는 느낌이다. “지금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아리송한 표정만 짓겠지. 그러던 중 한 기사를 만났다. 코로나를 이겨내자며 돼지저금통을 전달한 익명의 기부자 이야기다. 맞춤법은 서툴지만 진심을 담은 성숙한 편지와 함께 기부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을 전달했다. 이 기사를 읽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외에도 끝없는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의료진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뒤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개인위생을 지금보다 더 신경을 많이 쓰고, 마스크가 1개라도 여분이 있다면 이웃에게 나눠주고, 원격근무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받은 동료의 일을 도와주고, 코로나 관련 사실 정보를 공유하는 일 등이 있겠다. 주변인에게 안부 톡을 보내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불안을 잠식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웃의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았듯 누군가도 나의 작은 행동에서 조금이나마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 혐오보단 공감의 바람이 더 거세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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