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찬반 간에 평가가 엇갈리지만 20대 국회는 역사에 남을 두 가지 역할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정치 및 사법개혁 입법이다. 두 사건에서 여야는 극한 대결을 벌였고, 국론마저 쪼개져 막심한 후유증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

여야 합의로 제정된 법률도 정치적 입장이 바뀌면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다. 대결로 통과된 법률이 제대로 시행될 리 없다. 선거개혁을 명분으로 한 준 연동형비례제와 사법개혁을 명분으로 한 공수처법도 그럴 운명에 놓일 전망이다.

이 법 제정에 반대했던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 이하 같음)측은 총선에서 승리해 두 법을 폐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 중에서 준 연동형비례제도는 시행되기도 전에 여야가 입법 취지를 유린해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상태이다.

비판하는 시민단체@사진 경실련 홈피 캡쳐

원래 국회의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1인1표제의 승자독식 구조에 내포된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패자를 찍은 표가 사표화(死票化)하는 현상을 막아 투표의 등가성을 보완하자는 취지였다.

정당들은 이 제도를 직능, 세대, 성, 계층별 대표성을 보완해 지지층을 확대하는 용도로 활용함으로써 순기능도 있었다. 거기에는 국회가 전문성을 결여한 투사형 정치인들의 집합체여서는 안 된다는 반성도 다소간 곁들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전문성 보완보다는 당 지도부나 계파 간의 제 사람 심기 용도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야를 떠나 정치자금 조달수단으로 이 제도를 이용해 비난을 샀고, 정치자금법 위반사건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20대 국회에서 범여권의 연합체인 이른바 4+1체제가 일방 통과시킨 준 연동형비례제는 거대 정당의 비례의석을 군소정당에 양보한다는 것이 골자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것을 미끼로 군소정당들과 연합해 4+1체제를 만들어 개혁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새 비례대표제에 의한 의석 나누기 방법은 너무 복잡해 일반인들은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는 이런 사정을 빗대어 “그런 것(계산법)까지 국민들이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해 엄청난 비난을 샀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입장에서 4+1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군소정당에 표를 양보한들 손해날 것이 없다. 소수당 육성과 다당제 국회로의 변화를 이끈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이다. 그들이 호언했던 20년 집권, 100년 집권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거대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입장에선 그것은 악몽이다. 민주당과 군소정당들은 명분이든 실리든 얻는 것이 있지만 미래통합당은 현재의 비례의석의 상당부분을 잃을 수 있다. 현재보다 의석이 더 준다면 여당의 독주를 막을 길이 없어진다.

개혁법안의 통과가 원내 제 1당의 지위를 잃고, 국회 의사봉을 행사하는 국회의장 직을 잃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뼈저리게 느낀 미래통합당의 입장에서 다음 국회 4년을 그렇게 보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비례의석을 건지기 위해 비례의석만을 위한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꼼수의 배경이다.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휴지화한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온갖 비난과 조롱을 퍼부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그러려니 했다.

그러던 중 정국에 중대한 변수가 대두됐다. 조국사태와 개혁입법 일방통과,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여당의 위선, 오만, 무능이 드러났다. 민주당의 총선전략은 뚜렷한 민심이반 속에서 빨간 불이 켜졌다.

원내 제1당을 지키기가 위태로워졌고, 자칫하면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의석이 3분의 2를 넘어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엄살까지 부리고 있다. 군소정당에 호기롭게 양보하겠다던 비례의석 한 석이라도 절실하게 아쉬워진 형국이 된 것이다.

민주당은 이 난경을 돌파할 방법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미래통합당이 꼼수정당으로 지역구에서도 이기고, 비례의석도 고스란히 건지는 ‘꿩 먹고 알도 먹는’ 수가 생겼다면, 민주당도 꼼수정당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것이 다수 의견인 것 같다.

다만, 미래통합당의 꼼수에 온갖 조롱과 비난을 쏟아냈던 터라 자신들도 똑같은 꼼수를 쓰겠다고 말하기가 민망하다는 게 고민이다. 그래서 꼼수정당의 창당이 아닌 외부 단체가 만든 꼼수 정당에 편승하는 연대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외부 정당과 연대하는 방식이 민망함도 덜고 욕도 덜 먹는 방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그것이 꼼수의 꼼수라는 것을 모를 국민은 없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위기를 느낀다면 원인은 그들의 위선과 오만과 무능 때문이지, 미래통합당의 꼼수정당 때문이 아님을 각성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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