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의 제일처럼]

[청년칼럼=방제일] 한 남자가 녹음기에 대고 말을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발레리 레가소프다. 레가소프는 핵물리학자다. 어느 날 그는 크렘린 궁전으로 예기치 않은 초대를 받는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 그에게 문서가 전달된다.

그 문서를 읽던 레가소프의 눈은 급격히 커졌고 이내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 문서에 묘사된 검은 광물인 흑연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다. 레가소프는 체르노빌 사고를 수습한 후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불이 모두 꺼진 집 안에서 죽음을 결심한다. 죽기 전 그는 녹음기에 대고 ‘정의’에 대해 말한다. 그는 정의가 이미 실현됐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입장에서의 정의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의라고 불렀던 것들은 사실 ‘광기’였는지도 모른다고 읊조리는 레가소프, 그가 세상에 향해 묻는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거짓이다. 코로나19보다 빠른 전파력을 가진 미디어19라는 정체 모를 바이러스는 또 다른 바이러스를 양산하고 있다. 바로 혐오와 불신이라는 바이러스다.

픽사베이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두려워한다.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바이러스가 가진 ‘위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정,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스와 메르스를 지나 지금까지 지구에 도래했던 모든 전염병에서 죽음을 간접 경험했던 불안이 도시와 사람들을 휘감았다.

코로나19의 불안을 미디어19가 받아들였다. 미디어19는 불안의 실체를 공포로 현실화했다. 매일 숫자로 표기되는 공포는 사람들에게 불신과 혐오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싸구려 영상과 폐기되지 않은 글들이 입과 입을, 손과 손을 타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전파됐다. 코로나19가 전파되는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

불신은 깊어졌다. 불안은 증폭됐다. 그럼으로써 혐오는 내재화됐다. 표정 없는 사람들은 이제 무의식적으로 입과 코를 막는다.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과 마스크로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 사이의 지리멸렬한 줄다리기가 계속된다. 진실을 마주하고 대항하려 노력하는 이들이 오히려 거짓을 말하고 기만하는 자들로 둔갑하기도 한다.이는 과거 ‘가만히 있으라’라는 외침에서 배운 역설적 교훈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 속에 깊숙이 자리했다.

나 자신은 내가 지켜야 한다. 이것은 이제 미디어19 시대의 도그마가 됐다. 사스, 메르스, 세월호, 코로나19까지 수많은 거짓들이 있었다. 그 결과 미디어19는 이제 거짓의 경연장이 됐다. 누가 더 자극적으로 거짓을 말할 것인가. 어떻게 거짓을 진실인 양 포장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것인가.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거짓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진짜인 줄 알았던 모든 것이 가짜다. 사실을 왜곡해 진실인 양 포장한다. 잘 포장된 거짓은 변형돼 또 다른 사실로 둔갑한다. 이 모든 것이 ‘미디어’와 SNS라는, 이 시대의 가장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퍼져 나간다. 바이러스처럼 퍼진 뉴스는 숙주를 찾아 나선다. 걸러지지 않은 새로운 바이러스들은 면역력이 있을 수 없는 숙주들에게 뇌를 공격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세뇌됐다. 거짓의 대가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최근 대한민국 내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코로나19’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한 ‘코로나19’는 각종 매체와 전파를 타고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매일 몇 명이 감염됐는지,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누가 감염됐는지에 몰두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가 죽었다네, 이번에 걸린 사람은 어느 지역의 누구라는 ‘카더라’ 통신들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이내 이것은 곧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처럼 서로가 서로를 힐난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거짓의 대가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불신과 혐오라는 이름의 바이러스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서로를 믿지 않는다. 내 이웃의 죽음보다 나의 생존이 중요해진 것이다. 나와 내 가족, 내 영역 안에 있는 이들만 안전하다면, 누가 죽든 누가 살든 크게 상관이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거짓의 대가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자연 재해가 아닌 재난의 모든 원인은 인재(人災)다. 가만히 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 제대로 움직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움직이지 않아서, 혹은 움직여서 일어난다. 신천지는 자신들의 신도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 중국 우한에 설치한 교회 지부는 없다고 세간에 말했다. 거짓이었다. 그 결과 대구와 경북지역은 코로나19로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 거짓의 대가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코로나19를 두고 거짓을 행하는 이들이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있다. 정부 탓이라는 거짓, 중국 탓이라는 거짓. 종교 탓이라는 거짓. 서로가 서로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 미디어19는 이런 상황을 조롱하듯 희화화한다. 문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죽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죽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비극이 일어난다. 비극은 그렇게 참상으로 바뀐다. 거짓의 대가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진정한 위험은 수많은 거짓말에 속았을 때 아예 진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지금 바로 여기, 이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다. 바로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불신과 혐오다. 이 바이러스를 치료하지 못하는 한 광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결국 입과 코를 가린 표정 없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영원히 타인과 세상을 믿지 못하는, 영원히 치료되지 않는 바이러스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것이다. 거짓의 대가다.

 방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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