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논객칼럼=김호경]

이해해서는 안 되는 엉망진창의 이야기

“아침에 달님과 함께 일어나 밥을 먹다가 재채기가 나와서 김치를 책 속에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빨간 콜라가 열렸다. 문득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신 것을 깜빡하고, 창을 열어 아이들을 불렀다.”

이러한 문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뒤죽박죽, 오락가락, 중구난방이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책이 150년(1865년 첫 발행) 넘게 세계 곳곳에서 읽혀졌으며, 지금도 누군가 읽고 있으며, 앞으로도 읽을 확률이 높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어쩌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을 것이며,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간행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문장 미성립, 의미불통, 이해불가의 책을, 그것도 동화책을 줄기차게 읽는 것일까? [나무위키]에 따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화책에 그치지 않고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심리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물리학에서는 빅뱅이론, 카오스 이론,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을 설명할 때 이 작품과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된다. 그 외에도 진화생물학 등 다른 과학계에서도 폭넓게 인용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질병도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왜 그러한지는 설명이 없다.

루이스 캐럴은 수학교수였으나 인류에게 불멸의 ‘읽을거리’를 남겼다@김호경

사실 이 책을 설명하거나, 해설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특징적으로 드러나기는 해도 이야기의 전개는 기승전결이 아니라 뒤죽박죽이다. 그 이유는 –나의 생각으로는- 이 책은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작가(원래는 수학자) 루이스 캐럴의 '창작 시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뇌 구조를 샅샅이 파헤치지 않는 이상 해석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그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냥 이 책을 읽고 각자가 알아서 ‘즐겨야’ 한다. 해석하려는 어리석음만 범하지 않으면 된다. 나아가 의미를 찾으려는 행동도 지극히 어리석다.

당장 목을 베라!

어떤 책에서는 앨리스가 11살이라 하고,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7살이라 하고, 어떤 책에서는 나이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앨리스는 영원히 허구와 모험의 세계를 누비는 소녀라는 사실이다. 키가 거인처럼 커졌다가 난쟁이처럼 작아지기는 하지만 마음만은 순진무구하다. 괴기한 인물들과 동물들, 그리고 사물들과 마주 칠 때마다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해도 능수능란하게 헤쳐 나간다.

시계를 차고 조끼를 입은 흰토끼, 코커스 경주를 하자고 친구들을 꼬드기는 도도새, 거만하고 불친절한 애벌레, 슬며시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체셔 고양이, 날짜만 표시되는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 모자 장수, 앨리스를 돼지라고 부르는 괴팍한 공작부인, 신화에 등장하는 그리핀(griffin, 독수리의 머리, 날개, 앞발 + 사자의 몸), 바닷속 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 가짜 거북, 머리에 지푸라기를 꽂고 다니는(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3월토끼, 그리고 언제나 호통만 쳐대는 하트여왕과 왕.

여왕은 툭 하면 이렇게 말한다.

“당장 목을 베라”

그녀의 명을 따른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생물체는 하나도 없게 되지만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후련해지고,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흉악한 범죄자를 앞에 두고 “당장 목을 베라”, 부정부패로 똘똘 뭉친 정치인들의 무릎을 꿇린 다음 “당장 목을 베라”고 외치는 상상을 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이 등장하는데 책마다 호칭이 다르다. 영어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기가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또 번역자마다 생각이 달라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오래된 코미디에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치치카포사리사리센타워리워리세브리깡무두셀라구름이허리케인에담벼락담벼락에서생원서생원에고양이고양이엔바둑이바둑이는돌돌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한국인은 이 이름의 의미를 대략 짐작하지만(그리고 빙긋 웃지만) 이것을 영어 혹은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등장인물들은 이 이름과 같고, 어떤 의미에서는 책의 내용도 비슷하다. 문장은 언어유희가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물고기 하인이 편지를 읽는다.

“공작부인께, 여왕폐하께서 크로켓 경기에 참여하라는 전갈이오”

개구리 하인이 그 말을 받아 읊조린다.

“여왕폐하께서, 공작부인이 크로켓 경기에 참여하라는 전갈이오”

똑같은 말인데, 처음 읽으면 혼란이 일어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50년 넘게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는 책이다@김호경

아이들은 오늘이 아닌 ‘내일의 집’에 살아간다

평범한 한 사람이 8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그리고 그가 운이 좋다면 평생 동안 시기별로 세 아기를 만날 수 있다.

첫째는 누나 혹은 형의 아기이고, 둘째는 자신의 아기이며, 셋째는 손주이다. 그 아기들 모두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가장 예쁜 아기를 꼽으라면 단연코 손주이다. 사랑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강해진다(하지만 불행히도 평생 단 한 명의 아기도 품에 안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 아기들의 성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대에 부풀기도 하면서도 아스라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 추억은 자신의 유년시절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당연히 세상을 알 필요가 없었던, 천방지축으로 뛰어놀았던 철부지 시절이 뇌리를 스친다. 어렵고 힘들었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웠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 앞에 나타난 아이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잘 자라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 바람을 담은 책이라 생각한다. 빗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에서 옷이 젖는 줄 모르고 첨벙거리며, 눈이 내리면 못난 눈사람을 만들고, 장난감 자동차의 바퀴가 빠져 망가질 때까지 바닥에 굴리고, 금발 인형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변신 로봇을 조정하면서 악당을 물리치는 기개를 발휘하고, 어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꿈이다. 다다를 수 없는 먼 미지의 꿈이지만 그 꿈이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은 아름답게 성장한다. 좌충우돌, 괴기망측, 허무맹랑이 더 커질수록 세상은 더 멋진 곳이 되어간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앨리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하지 마라. 그래서 칼린 지브란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너희가 아이처럼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를 너희처럼 만들려 애쓰지는 말라.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을 대표하는 환상동화로 꼽힌다 @김호경

* 더 알아두기

1. 루이스 캐럴(Charles Lutwidge Dodgson 1832~1898)은 영국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수학교수였으며, 글쓰기를 좋아해 9만 9천 통의 편지를 보관했다고 한다.

2. 처음에 자신이 직접 그린 삽화를 첨부한 <땅속 나라의 앨리스>가 원본이었다. 후속작인 <거울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는 1871년에 출간되었다.

3. 아이들의 모험을 다룬 동화는 셀마 라게를뢰프(스웨덴)의 <닐스의 신기한 여행>, 제임스 메튜 배리(영국)의 <피터팬>, 쥘 베른(프랑스)의 <바다속 2만리>, <15소년 표류기>를 권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도 재미있는 동화이다.

4. 마크 트웨인(미국)의 <톰 소여의 모험>은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5. <모모>로 유명한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Die unendliche Geschichte 1979)는 소년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의 환상적인 모험을 그린 소설이다. 700쪽이 넘는 방대한 이야기이다.

6. 인도의 신비가 겸 철학자, 저술가인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는 자신이 읽은 수많은 책들 중에서 150여 권을 선정해 <내가 사랑한 책들>(한울림 2014)을 펴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그중 1권이다.

7. 모험을 찾아 떠나는 환상소설의 또 다른 대표작은 프랭크 바움(미국)의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1900년)이다. ‘오즈’라는 마술나라로 떠나는 소녀 도로시와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의 여정을 보여준다. Oz는 금과 은의 단위를 상징하는 Ounce의 영어식 줄임말이며, 허수아비는 농민을 상징하고, 양철나무꾼은 공장 노동자들을 상징한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Oz는 작가의 책장에 꽂혀있는 서류들의 분류에 O~Z라고 쓰인 글자를 보고 무심코 지은 것이라 한다. 어느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8. 일본 작가의 모험 환상소설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들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원작 소설이며, 1934년에 발표되었다. 가난하고 외로운 소년 조반니가 캄파넬라와 함께 은하계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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