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청년칼럼=고라니]

공무원이 숨졌다. 코로나 비상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지 나흘 만이었다.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에도 휴일을 반납하고 비상근무를 해오던 공무원이 자택에서 사망했다. 이들을 죽게 한 건 전염병도, 사고도 아니었다.

'일'이었다.

앞에 '공'자가 붙은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남의 나라 얘기다. 국가적 재앙 앞에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노출시켜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마비되는 걸 막기 위해 국가는 자신의 손과 발을 망설임 없이 굴린다. 피와 살이 터져도 괜찮다. 다친 자리엔 새 살이 돋아나니, 우선 위기를 넘기는 게 먼저다.

픽사베이

공공서비스는 어떠한 상황에도 제공되어야 한다. 민원인이 왜 기분 나쁘게 마스크 쓰고 일하냐며 삿대질을 해도, 체온측정 좀 하겠다는 말에 쌍욕을 하며 침을 튀겨도 어쩔 수 없다. 폭주하는 민원과 현장지원 업무로 몸이 상해도 할 수 없다. 나의 안전과 건강 이전에,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먼저다.언제나 그랬다.

입사 이래 최고의 업무량이 이어지고 있다는 '공노비'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업무 특성상 사람 만날 일이 몇 배로 늘었다는 이들도 많다. 유일한 보상은 '보람'이요, 하루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사명감'이지만, 그건 천직을 찾은 어느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직원들은 그냥 밥 벌어먹으려고 꾸역꾸역 일을 한다.

공공서비스는 어떤 상황에도 제공되어야 한다는 말에 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동의한다. 스트레스로 머리털 빠져가며 돈을 벌어보니, 피 같은 세금이라는 비유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밥을 벌어먹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야근과 주말근무는 감수할 수 있다. 일 떠넘기는 과장이나 실적에 급급한 팀장을 위한 일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사태로 절박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를 돕는 일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내 몸을 바칠 만한 일은 아니다. 가족에게 써야 할 시간을 모두 희생해서 처절하게 일하다 몸을 상할만한 일은 절대 아니다.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사람은 없다. 강요당할 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노동청에 신고하거나 블라인드에 글이라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체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라면, 그 뒤에 숨어서 맨손과 맨발을 처절하게 굴리라 명령하는 국가라면, 개인의 구제는 요원해진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왔다. 난 그 움직임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공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그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길 바란다.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굴러가는 국가는 틀린 국가다.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의 안전은 지켜져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눈이 뻘개져서 일하고 있을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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