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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사라지는 우체국[김철웅의 촌철살인]
김철웅 | 승인 2020.03.14 07:00

[논객칼럼=김철웅] 

교육자 이오덕은 아동문학가 권정생과 젊은 시절 주고받은 편지를 잘 보존하고 있었다. 그 편지들을 책으로 펴낸 게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2003)이다. 세상에 이렇게 빛나는 우정의 편지가 또 있을까. “이오덕: 어느 골짜기 양지바른 산허리에,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라 아침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권정생: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 끼 보리밥을 먹고살아도,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한 일간지에 연재중인 출판인 김언호씨의 회고록에 며칠 전 이런 내용이 소개됐다. 새삼 상기시키고 싶은 게 있다. 두 사람이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체국 덕분이란 사실이다. 우체국과 집배원 그리고 편지는 마치 공기처럼 우리에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져왔다.

 이 일상성이 흔들리고 있다. 우체국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근본 원인이 편지를 주고받는 풍토가 퇴색하고 있기 때문인 건 맞다. 우리나라의 우편물량은 2018년 36억900만통으로 집계됐는데, 2010년 48억7000만통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 추세는 최근 1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1인당 우편 물량도 2010년 96.4통에서 2018년 69.6통으로 줄었다.

우체통@논객닷컴

 며칠 전 ‘폐국(弊局) 위기의 망원동 우체국 지키자’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는 4월2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이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을 예정인데 주민들이 우체국 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지방우정청 관계자는 “망원동우체국은 3년 연속 우편 물량이 줄어들었다”며 “우체국은 세금이 아니라 자체 수익으로 예산을 조달한다. 최근 적자가 이어져 불가피하게 폐국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신 근처에 우편취급국이 들어서게 된다. 우편취급국은 민간위탁시설로 금융업무는 하지 않고 우편물만 취급한다. 3명 이하 소규모로 운영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1989년 문을 열어 올해로 31년째 자리를 지켜온 망원동우체국에는 치킨집이 들어오기로 돼있다고 한다.

 사라지는 우체국은 망원동우체국만이 아니다. 지난달 우정사업본부는 2023년까지 전국 직영우체국 1352곳 가운데 절반가량인 677곳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서울 24곳, 경인 28곳, 부산 29곳 등 전국 171곳 우체국이 문을 닫을 계획이다. 이에 전북 군산시의회는 최근 군산시 우체국 폐국 반대건의안을 채택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전달했다. 시의회는 “공공기관인 우체국이 문을 닫는다면 열악한 지역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고 금융소외계층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 동구의회도 결의안을 통과시켜 관련 기관에 보내면서 “아직도 많은 국민이 고지서와 각종 생활 관련 정보를 우편으로 받아보고 있다. 우편은 국민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서비스”라고 지적했다. 제주도 예외가 아니다. 전체 30곳 중 13곳 안팎이 폐국 대상이 되는데, 당장 올해부터 협재와 고산우체국이 우선 정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우체국을 줄이는 명분은 경영합리화다. 우편사업은 2011년부터 계속 적자인데 지난해엔 적자폭이 2000억원을 넘었다. 이에 대한 타개책이 전국 우체국의 절반을 없앤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편이라는 보편적 공공서비스를 단순한 적자·흑자 논리로 재단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우편사업을 국가가 맡은 까닭이 있다. 이윤이 최우선 가치인 민간기업이라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오지에 홀로 사는 노인이나 외딴 섬 주민들이 우편물, 선거공보물을 받아보기 힘들다. 기업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당장 우체국 수부터 줄일 것이다. 그런 생각은 시장과 경쟁에 모든 것을 맡겨놓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발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2013년 공공의료 서비스인 진주의료원을 ‘귀족노조’와 수익성 악화에 따른 적자 누적을 이유로 폐업시킨 우리의 경험과도 통한다.

 코로나19가 확산을 멈추지 않는 판국에 우체국 절반이 사라진다는 게 무슨 대수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 독일 작가 안톤 슈나크는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고 썼다. 그 밖에도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따위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로 들었다. 나는 사라지는 우체국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 현란한 디지털 시대에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의 신음이 들려오는 것 같아서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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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kcu5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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