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청년칼럼 김우성 일기장
말도 안 되는 인생[김우성의 일기장]
김우성 | 승인 2020.03.18 08:39

[청년칼럼=김우성]

#1

매일 만나던 사람이 있었다. 가족만큼.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 밥을 같이 먹는 건 물론, 부모님께 이야기하지 못할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유는 잘 모르지만 우리 사이가 예전과 달라졌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연락이 뜸해지더니 결국 우리의 연이 끊어졌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흔한 문자 메시지 한 번 보내기가 이제는 조심스럽고, 만나서 밥 한 번 먹기는 더더욱 어려운, 그 누구보다 껄끄러운 사이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연락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연락하기 싫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런 사이로 변질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사실은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괜히 모른다고, 그래서 서운하고 억울하다며 시치미를 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픽사베이

#2

“안녕” 옹알이 하던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할 때 배우는 기본 표현이다. 외국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도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 등 다른 나라 언어로 ‘안녕’ 정도는 할 줄 안다. 그만큼 쉽고 쓸 일이 많은 인사말인 셈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 말을 꺼내기가 마냥 쉽지는 않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식당에서 혼밥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선 가운데, 상대방에게 안녕하냐고 묻는 일은 드물다. ‘말을 걸어볼까?’하는 마음이 크게 들지 않을뿐더러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는 않을까?’하는 기대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지도, 받지도 않는 게 어느 새 자연스러워진 현실. 인구 밀도가 높은 장소라고 해서 인사말이 쉽게 오고가는 게 아니기에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인사를 못한다고 둘러대지도 못한다. 오 이런, 그럼 남에게 인사 건네지 못하는 핑계(?)를 어디서 찾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안녕이라는 말을 주저하게 하는 걸까. 휴대폰 속에서는 대화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노란 풍선에 가득 담아 보내면서, 정작 바로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에게 “안녕” 한 번 외치는 모습이 왜 보기 어려운지. 스마트폰에 보내는 시선의 10분의 1만 나에게 허락해주면 안 될까요?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당신에게 인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런데 왜 저에게 눈길 한 번 안 주시나요. 소통을 하고자 노력하다 실패하고, 때로는 노력할 의지조차 상실해 결국 입을 꾹 다물고 만다. 그렇게 조용히, 붐비는 인파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3

‘가족’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따뜻한가, 냉랭한가? 가족은 우리에게 힘을 주는 동시에 상처도 주는 공동체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편안히 기댈 가족이, 불편해서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밖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현관문을 열기 직전 내뱉는 숨이 안도의 한숨인가, 걱정의 한숨인가? 가족 때문에 웃고, 그리고 그들 때문에 울던 기억은 다들 있을 것이다. 웃는 일만 가득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이상 갈등은 불가피한 것 같다.

“너를 밖에서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군 복무 중, 나와 갈등을 빚었던 선임이 나중에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밖에서 만났다면, 비즈니스 미소를 보이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예의를 갖춰 관계를 좋게 유지했을 텐데. 그랬다면 상처를 주고 받지도 않은 채 서로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겠지.

선임이 나에게 한 말이 왠지 슬프게 들렸다. 뒤집어 말하면, 가족처럼 한 지붕 아래서 먹고 자는 사이는 필연적으로 서로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주고 받는다는 것.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 그렇게 평생 잊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게 사랑이고 가족인가 보다.

상처가 수반되는 사랑, 그런 사랑을 하면서까지 가족과 지지고 볶으면서 살고 싶으십니까?

나의 대답은 “예, 그렇습니다”입니다.

그래요, 사랑은 아프려고 하는 거죠. 우리네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우성  kws3f10@naver.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우성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매체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논객닷컴 | (03163)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2, 대일빌딩 1108호
대표전화 : 070-7728-8569 | 팩스 : 02-722-65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국
제호: 논객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78 | 등록일 2011년 9월 27일 | 발행일: 2011년 10월 1일 | 발행ㆍ편집인 : 권혁찬
Copyright © 2020 논객닷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