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경찰은 폭력조직을 단속하면서 조직폭력과 연계된 학생들을 검거하였다고 한다. 검거된 이들은 동료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뺏었다고 한다. 이번 경찰 수사결과가 학교폭력 해결의 전면에 나선 경찰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안겨주었다고 해야 할까? 혹 일망타진 식의 조직도가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난 2월 김황식 총리가 나서서 학교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정부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정부의 요란한 학교폭력 대책은 ‘처벌’에 집중되어 있다. 가해자 처벌이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학교폭력 신고 센터를 경찰청으로 일원화하고, 가해학생을 경찰이 감독하고, 보복 폭력 시 강력 처벌한다. 그리고 폭력 기록은 학생기록부에 기재되어 상급학교 진학에도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교사의 책임이 강화되고 가해학생의 부모에 대한 특별교육도 부과된다.

친구들의 왕따와 폭력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대구중학생의 유서를 보면 학교폭력에 대한 정부 정책이 나온 급박함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 자살한 학생들의 유서를 찬찬히 읽어보면 경찰이나 정부의 처벌위주의 대책이 학교폭력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일진소탕’식의 대책은 그리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경찰의 발표와 같이 폭력 조직과 연계된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유서들을 읽어보면 학교폭력이 외부의 폭력조직이나 학교 내의 대단한 조직을 갖춘 폭력 써클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왕따’와 폭력은 매우 평범한 아이들의 친구나 학급 집단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범한 학생들의 또래집단에서 문제가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의 집단 내에서 따돌림이 생기고 폭력이 벌어지고 있다. 왕따와 폭력은 또래집단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가 알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을 수 도 있다.

학교폭력이 습성화되고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모호하고, 학교폭력이 교실에서 가장 빈번히 발생한다. (전체의 43.8%) 이렇듯 학교폭력의 대부분이 학교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생활에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의 일상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셈이다.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의 저자 마이클 톰슨은 “또래집단이라는 고속도로”라고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아이들의 집단을 표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아이들은 또래집단이라는 고속도로에 올라타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고속도로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든 벌인다고 한다.
또래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여자 친구를 성폭행하는 일까지 벌인다고 톰슨은 말한다. 교복 찢기의 대열에 동참하고, 친구들의 폭력행사에 휩쓸리게 되는 일들이 모두 또래집단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왕따와 학교폭력은 아이들의 또래집단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문제는 이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똑같은 나이의 아이들을 집단으로 모아놓고 있는 근대 학교교육이 초래한 부작용의 하나라 할 수도 있다. 사회 현상의 복사판이기도 하고, 학교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는 우리는 답답하다.

우리의 아이들을 이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뭔가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그렇지만 정부의 ‘처벌’위주 대책은 문제의 해법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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