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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무명배우 생활로 깨달은 이야기[하정훈의 아재는 울고 싶다]
하정훈 | 승인 2020.03.25 08:05

[청년칼럼=하정훈]

무명배우로서 보냈던 10년의 시간, 그 10년간의 무명배우시절을 통해 깨달았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 고향은 전라남도 여수입니다. 제가 자랄 때까지만 해도 여수가 지금처럼 그렇게 유명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낭만포차다, 여수게장이다 무척이나 유명해졌지만 어릴 때만 해도 그저 조용한 어촌같은 그런 한적한 도시였습니다. 남고를 나왔는데, 친구들은 스타크래프다, 축구다 하고 서로 어울렸지만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이 어렵거나 그런 집안은 아니었으나 아버지가 좀 보수적이셔서 컴퓨터를 사주시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게임도 하지 못했고, 축구도 잘 못했습니다. 

그나마 유일한 취미가 영화보는 거였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비디오테이프라해서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를 대여할 수 있었습니다. 가격도 굉장히 싸 500원이면 최신 영화비디오를 빌려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테이프를 빌려 집에서 혼자 영화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계속 보다보니 영화라는 세계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됐습니다. 갑자기 저 멋진 세계를 만드는 사람, 즉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습니다.

물론 영화과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대가 엄청 심했습니다. 여수에서 영화과 간다고 하니 친구들도 굉장히 신기하게 봤고, 저를 하감독이라고 친구들이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과에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영화감독 되기가 무척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1병이 걸린 것입니다. 중2병처럼 대학교 처음가면 모든 게 그냥 허무한 거 같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런 기분이 들듯이...

어차피 군대 문제도 해결해야 해 군대로 도피했지만, 군대는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위기였습니다. 군대에서 '갈굼' 엄청 당하면서 힘들게 군생활도 했습니다.그래도 사회에 나와서 뭘 할지 제대로 고민했습니다. 영화감독은 그렇고, 뭘 할까? 고민하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나름 내가 느낌있어 보였습니다. 눈빛도 깊어보이고... 당시 홍콩배우 양조위를 좋아했는데, 그런 느낌이 나에게 아주 조금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영화배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픽사베이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배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연기학원을 다니고, 오디션을 보고...그러나 생각보다 배우 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오디션도 주구장창 떨어지고...아르바이트도 이것저것 다 해봤습니다. 아무래도 배우를 해야 하니, 언제 오디션일정이나 촬영일정이 잡힐지 모르니 단기 아르바이트 위주로 해야 했죠. 그러나 대학생들 단기 아르바이트, 조건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청춘의 꿈은 무척 소중한 것이니,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금 아프고 시련이 따르는 건 그때만해도 너무나 당연한 거라 여겼습니다. 그 시절 오래 만난 여자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내가 꿈을 향해 힘들게 달려가는 모습을 좋아했습니다. 처음엔 좋았었죠.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응원했으니까. 그러나 몇년이 지나자 그 친구는 지쳐가더군요. 헤어지게 됐는데, 그 친구의 말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 오빠의 일은 존중해. 하지만 난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애 " 

무슨 드라마에 나온 대사 같았습니다.

거기에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습니다. 난 꿈만을 위해 달려간 것 뿐인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건지. 처음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분노가 마음속에 찼고, 증오의 시간을 몇 년간 보냈습니다. 그때 나이가 서른쯤. 통장 잔고를 보니 만원도 없었습니다.  몇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출연한 분량을 도합 따져봐도 1분이 채 안됐습니다. 10년을 배우로서 보냈는데, 출연 분량이 1분 정도라. 허무했습니다. 현장에 가서 한 두줄의 대사를 치며 연기할 때는 어쩌면 내가 어릴 때부터 정말 바랬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출연해 주연배우들과 대사를 주고받는 연기를 하는 것,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사 한줄하는 그 한순간만으로는 내 배우로서의 꿈, 행복의 전부가 채워지지가 않았습니다.

떠나간 여자친구와 내 통장 속 잔고만 허무하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물론 대사 한줄도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꿈을 상정할 땐 주인공으로서의 꿈을 상정하지, 단역으로서 꿈을 상정하진 않습니다. 서른이 조금 넘고서야 제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는데,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감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고민 끝에 꿈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배우라는 꿈을 향해 달려갔던 10년의 시간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배우로서 익혔던 화술과, 감정표현 등은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무대에서의 연기가 아닌, 교실에서 내가 주인공으로 존재하는 연기를 이제서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저의 무명배우 시절 이야기를 재미있어 했습니다. 비로소 엑스트라로서의 삶이 아닌,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의 살기 시작했습니다. 형편도 좀 나아졌습니다. 처음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생활이 조금 안정되고 편안해졌습니다. 다행히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또 만나게 됐고, 그 친구와 결혼을 꿈꾸게 됐습니다.

아직 저는 여러모로 부족한 남자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그녀에게 진실되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글을 씁니다. 그리고 아무도 몰라주는 제 무명배우로서의 시간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 야매배우,너와 결혼할 수 있을까? '라는 책을 쓰게 되었고, 저는 그녀와 작년에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작가로서의 타이틀도 생겼습니다.

저는 원래 스크린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스타, 대중의 별이 되는 건 내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스타가 되지 않으면, 별이 되지 않으면 저는 패배한 사람이 되는 걸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모두 배우이고, 주인공입니다. 다 각자 인생이라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배우들이니까요. 각자의 삶 속에서 주인공이 되는 그런 인생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무명배우 10년의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께 전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하정훈

 그냥 아재는 거부합니다.

 낭만을 떠올리는 아재이고 싶습니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정훈  screenboy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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