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신재훈]

앞선 몇 편의 글에서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3가지를 추천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행복 종합선물세트인 여행이다. 여행을 가급적 많이 하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행복 비타민인 배움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라는 얘기다.

세 번째는 행복 바이러스인 연애다. 연애하듯 뭔가에 빠져 보라는 얘기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한 3가지 방법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새롭게 뭔가를 해야 하거나 태도와 방식을 바꿔야 하는 다소간 귀찮은 일 일 수도 있다. 행복하게 살고는 싶지만 노력하는 것이 귀찮은, 그런 귀차니스트들을 위한 추천리스트 4번은 행복 감지 센서를 재조정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행복과 불행을 느끼고 감지하는, 일명 행복 센서를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재조정하라는 얘기다.

행복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일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센서를 조정해서 사소하고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일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센서가 고장났나 싶을 정도로 아주 둔감하게 반응하도록 센서를 조정해 웬만한 불행에는 평상심(平常心)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는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더위에는 민감한데 추위에는 둔감한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추위를 행복으로, 더위를 불행으로 혹은 그 반대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나 행복을 위해 쓰여진 많은 책에서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감동하고' 등과 같은 것이 바로 행복 센서를 민감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픽사베이

사실 행복 센서의 조정을 통해 보다 행복한 일상을 살도록 해주는 대표적인 방법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내가 어렸을 때 교회를 다니는 한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밥 먹기 전에 하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로 시작하던 그 기도를 항상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못마땅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분은 부모님이고 더 나아가 그러한 음식의 재료를 만든 노동자, 농어민인데 왜 그 아이는 하나님이 주셨다고 우겨대는 것일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그 말이 이해되었다.

그것은 사소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라는 가르침이자, 그 가르침을 일상에서 자주 쉽게 실천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작은 실천이 행복 센서를 민감하게 만들어 사소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인상 깊게 본 쿼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는 뜻의 라틴어 Quo Vadis Domine)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면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받아 사자의 먹이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사자에게 잡아 먹히면서도 두려워하기는커녕 노래를 부르며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나이가 들어 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어렸을 때 이해할 수 없었던 이 장면이 이해되었다. 불행을 행복으로 승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불행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불행의 아픔을 극복해내는 방법으로서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힘을 인정하게 되었다. 바로 이런 것이 내가 제안하는, 불행을 느끼고 감지하는 센서를 둔감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일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또한 유물론자다.

종교가 사회 전체 차원에서 아편처럼 현실의 모순을 망각하게 하여 노동자 계급의 혁명의지를 약화시킨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여전히 인정한다. 그러나 개인 차원에서 종교가 그 어느 국가기관이나 자선단체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데 더 많은 기여를 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행/불행의 센서를 재조정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개인적 차원에서 진심으로 종교를 믿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원광대학교 복지보건학부 김종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종교인이 정치인, 연예인, 교수, 고위공직자, 기업인, 예술인, 체육인, 법조인, 언론인, 작가 등 11개의 직업 군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직업 1위라고 한다. 그 이유가 스트레스 덜 받고, 욕심 부리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때문이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활방식과도 일치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상을 살아야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무리일지 모르지만, 우리 은퇴인들에게는 귀 기울여 볼만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행복하게 오래 사는 확실한 방법은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종교인처럼 사는 것이다.

그러한 삶은 본질적으로 행복 센서를 재조정하여 행복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불행에 대해서는 둔감하게 반응하며 사는 삶과 일맥상통한다.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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