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서정의 글우물]

[청년칼럼=허서정]  강원도 농수특산물 진품센터의 ‘핵감자 판매’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3월 24일이 마지막 판매일이었다. 오전 9시 59분 59초에 페이지를 새로고침했다. 판매중인 상품을 구매할 수 없었다. 접속자는 1초마다 백 단위로 늘었다. F5 키를 연타하던 도중 구매하기 버튼을 다섯 번이나 봤다. 물론 보기만 했다. 손이 눈보다 빠르다는 말은 진리였다.

마스크 판매 사이트는 오전에 열렸다. 고지된 시각 2, 3분 전부터 사이트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새로고침할 때마다 증가한 접속자가 1,500만 명에 달했다. 이번에는 구매 버튼조차 볼 수 없었다. 품절 공지가 뜨고 나면 리뷰 게시판을 기웃거리며 허탈감을 달랬다.

지난해 1월 25일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 최초 공개되었다. 몸만 건강해도 이길 수 있는 병에 사람들이 죽어났다. 못 먹고 가난해서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천민이 좀비에 물린 시신으로 고깃국을 끓였다. 인육을 먹은 모두가 생사역(역병에 걸린 사람)으로 변했다. 눈이 하얗게 뒤집힌 그들은 오로지 피와 살을 탐하게 되었다.

픽사베이

2020년 1월 2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두 달이 지났다. 확진자는 줄어드는 듯하다가 다시 세 자릿수를 찍었다. 사망자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기약 없는 종식 앞에 오던 봄도 멈췄다. 무기력에 감염된 사람들은 집중할 곳이 필요했다. 태어나서 감자를 이렇게 간절히 원해본 적이 있었던가. 공적 마스크 판매가인 1,500원보다 저렴한 값에 마스크를 판매하는 사이트는 금세 공유되었다. 몇 시간씩 줄을 서지 않고도 운이 좋으면 한번에 10매 이상 구할 수 있어서다.

어떤 곳은 폭주하는 서버를 감당하기 어려워 게릴라 판매로 전환했다. 오전-오후 마감을 공지해주면 그나마 낫다. 사람들은 9 to 6 근무를 지키며 주 5일 마스크 홈페이지로 ‘출근’한다. 몇 시에 어느 품목이 풀릴지 모르니 자리를 못 비운다. 육아도, 대화도 모두 멈췄다. 확산세가 주춤했다지만 코로나는 사회에 불안과 집착을 던져 놓았다. 과민해진 신경이 노이로제를 부른다. 집에만 있어도 피곤해진 사람들은 쉽게 동요한다. 마스크 판매로 폭리를 취하는 장사치와 중국 혐오 프레임이 슬며시 파고든다.

감염되고도 감염된 줄 모르는 이런 내부적 질환은 코로나보다 위협적이다. <킹덤>에서 생사역 시신들은 불태워야 다시 깨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교의 나라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태울 수 없어 묻기로 한다. 많은 시신들 중에서 양반과 천것을 어떻게 구별하냐는 물음에 이방이 답한다. “아유, 누더기 입은 시신은 태워버리고 비단옷을 입은 시신은 땅속에 아주 깊이 파묻으면 되잖습니까?” 되기는 뭐가 된단 말인가. 밤이 되면 양반 좀비한테 뜯길 판이다. 그들에게 역병 전염 방지라는 본질은 관심 밖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시국에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n번방 사건은 2018년 하반기부터 운영된 n번방과, 2019년 7월부터 운영된 박사방을 모두 포함한다. 주요 피의자 중 한 명인 조주빈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 착취 영상을 찍도록 협박했다. 해당 영상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무차별적으로 판매 및 유포되었다.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청하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연관된 5개 청원에 동의한 서명자 수가 현재 600만 명을 넘는다. 특히 공분을 사는 이유는 피해자가 중학생 등 미성년자를 대거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충격으로 들끓는 가운데 언론들도 앞다투어 n번방 사건을 보도했다. 그중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었다. ‘조주빈 이웃들 경악… 불량하지 않았다’, ‘전문대 다닐 때 평점 4.17 우등생’.

스스로를 ‘악마’, ‘아티스트’라고 부를 만큼 비대한 자의식을 가졌지만 그 실체는 범죄자다. 범죄 이전의 면모와 행적은 핵심이 아니다. 또 다른 언론은 피해 중학생과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내용 중에는 매우 구체적인 가해 묘사가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세했다. 무슨 일을 어떤 방식으로 당했는지 낱낱이 묘사하지 않고는 극악범죄를 고발할 수가 없었을까.

여성 인권에 관련된 이슈이니만큼 젠더 갈등도 피해가지 못했다. 피해 규모가 3만이다. 아니다, 26만이다. 일부 남성이 저지른 범죄로 정상적인 남성들까지 의심하느냐. 성적 학대 영상을 소비한 남자들이 문제다. 일탈 계정을 운영해 범죄 빌미를 제공한 피해 여성들이 문제다. 당신 어머니나 여동생이라고 생각해 봐라.

무슨 생각이 드는가. 분별없는 2차 가해와 소모적인 싸움은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텔레그램 속의 범죄자들은 이지(理智)를 잃은 생사역과 다를 바가 없다. 성욕이 가로되 ‘너희 원하는 대로 하라’ 하니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코로나 감염병 초반 ‘100년 주기설’이 돌았다. 1720년부터 1920년을 거쳐 2020년 현재까지 맞춘 것처럼 일정하다. 차례로 흑사병, 콜레라, 스페인 독감이라는 그럴듯한 근거도 있다. 이 가설이 우스개이건 진실이건 상관없다. 유사 이래 언제나 대위기는 존재했고, 길거리를 아무리 청소해도 쓰레기는 있기 마련이다. 쓰레기는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이미 버린 쓰레기가 무슨 색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때보다 이 한 마디가 절실한 시점이다.

“뭣이 중헌디?”

허서정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새기고자 펜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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