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뜻한 생각]

[청년칼럼=김연수]

취업이 유독 어려워져서일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었다. 적당히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했거나 해당 학과에 비전이 없다고 느낀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씩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을 장기적으로 대비할 형편이 안 되는 경우는 공기업 입사로 진로를 바꾸기도 했다. 고루하고 따분한 직업으로 여겨질지라도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만큼 큰 메리트가 없는 것 같았다. 평생 글을 쓰고 살 줄 알았던 언니도 공기업 입사를 위해 자격증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녀가 각종 공모전을 비롯해 시, 소설 창작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탓에 이건 정말로 뜻밖의 선택이었다. 적어도 언니만큼은 꾸준히 글을 쓸 줄 알았기에 나도 모르게 무심코 이렇게 물었다.

“언니, 언니가 글 안 쓰면 누가 써요?”

“연수야, 나 계속 글 쓰고 싶어서 이거 하는 거야.”

언니는 어느 때보다 담담하게 답했다. 평범하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근무하며 남는 시간에 취미로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읽고자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쓰고자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다. 대다수 버킷리스트에 ‘죽기 전에 책 한 권 써서 출판해보기’를 적어놓곤 한다. 게다가 재능 있는 사람들 또한 넘쳐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오로지 ‘작가’, ‘소설가’, ‘시인’으로 성공하기에는 매우 힘겨울 것이다. 막연한 꿈을 바라보며 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이따금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다.

픽사베이

나는 오히려 확신에 찬 선택을 한 언니, 수많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부럽다. 될지 안 될지 두려워하는 마음에 시작도 못하는 것보다야 훨씬 호기롭고 멋지지 않은가. 높은 연봉 못지않게 워라밸이 중요해진 요즘, 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늘어난 게 싫지 않다.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두 다르니 그 우선순위를 잘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좋은 대학 입학에 실패하거나 대기업 입사에 자신이 없으니 공무원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며 개나 소나 다 공시생이라고 나무란다. 글쎄, 그렇다고 해서 공무원 시험, 공기업 입사가 결코 쉬운 건 아니다. 누군가의 신중한 선택에 대해 이기적인 잣대로 저울질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한때는 꿈과 희망이 가득해야 할 아이들이 장래 희망란에 공무원을 쓰는 게 안타깝기만 했다. 어른들이 지나가듯 말한 "공무원만 한 직업이 없지"라는 한 마디는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일 수도 있다고, 아이들마저도 은연중에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을지 모른다고 여겼다. 언니의 진심을 듣고, 저마다의 이유로 공시생의 길에 뛰어든 친구들을 보니 이런 이유라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에 주변에서 많이들 이렇게 물었다. "너 글 잘 썼잖아, 공부 잘했잖아, 왜 대학원 안가?" 당연히 대학원에 갈 줄 알았다는 말들은 나를 콕콕 찔렀다. 그렇게들 말하니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고 그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식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대학원 생활을 해볼까도 했었다. 마침 거짓말처럼 가족들이 연이어 아파서 쓰러지고 병원 신세를 지며 고심해보게 됐다. 대학원이 정말로 가고 싶은지를 말이다. 공부에 대한 갈망이나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쳐 꼭 교수가 되고 말겠다는 집념과 열정은 없었다. 그저 대학교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은 가벼운 소망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취업 도피성이랄까. 글을 사랑하던 언니가 글을 미뤄두고 한 선택과 그 이유에 비하면 하찮고 일시적인 사유였다. 무엇보다 대학원 진학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나도 호기로운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그래서 이젠 될까, 안 될까 하는 걱정과 염려보다는 즐겁게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결과가 중요한 세상에서 오늘을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빛난다.

그러니 모두 무엇을 준비하든 꽤 괜찮은 이유가 함께 하길 바란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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