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10년 전 쯤 나는 ‘흘러(流) 가는(行) 노래 붙들어 매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내 나이(60대)가 됐을 때 그들에게 남을 ‘흘러간 노래’는 어느 가수의 무슨 노래일까? jyj일까, 비일까, 아니면 서태지일까? 내가 애창하는 흘러간 노래들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이 따라 부르기는커녕 아예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 나의 ‘흘러간 노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흘러가서 자취도 없어진 노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이 나를 때론 쓸쓸하게 만듭니다.”

제 나이 70을 넘긴 지금 나는 TV조선이 일대 유행을 일으킨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열풍 속에 있습니다. 10년 전 나의 예상이 완전히 틀렸기 때문에 나는 더 기쁘고 행복합니다. 길게는 반세기도 더 이전부터 내가 즐겨 불렀던 노래들로 젊은 세대들이 경연을 벌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의 글을 쓸 무렵 기성 가수들의 서바이벌 노래경연무대였던 ‘나가수’라는 TV프로그램이 유행했습니다. 출연자들은 다양한 장르의 가요를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편곡하여 다양한 창법으로 불러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나의 세대가 애창했던 ‘봄날은 간다’와 같은 트롯 풍의 흘러간 노래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나는 오래된 유행가가 그런 식으로라도 젊은 세대들에게 소개되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TV조선이 작년 2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무명 여가수들을 대상으로 미스트롯 경연 대회를 열어 가수 송가인을 탄생시키더니, 올해 1월 2일부터 3월 12일까지 미스터트롯 경연대회에서 진선미 3인을 포함, 7인의 신인 가수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의 유튜브 방송화면

출연자들은 대개 트롯과 발라드를 넘나드는 이른바 ‘발로트’ 풍의 노래를 불렀는데, 대회명칭에 들어 있는 ‘트롯’의 의미를 살리려는 듯, 편곡이나 창법을 트롯 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트롯은 대중들이 즐기는 음악의 한 장르이지만, 다른 한 편에선 뽕짝이니 딴따라니 하며 비하하기 일쑤였습니다. 주최 측이 대회를 당당히 트롯경연으로 한 것은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대회에 몰린 가수지망생이 각각 1만 2000명, 1만 5000명이나 됐다고 합니다. 이것을 반드시 좋은 의미로만 해석하기는 어렵겠으나 트롯의 저변이 넓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숫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수의 자원만 풍부한 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애호가 층도 두터웠습니다. 미스트롯은 결승대회의 최고 시청률이 18.1%에 이르렀는데 미스터트롯의 최고 시청률은 그것의 배인 35.7%였습니다. 지금의 다채널 시대에 종편의 35.7% 시청률은 공중파 시대의 70%와 맞먹는 경이로운 기록이라고 합니다.

미스터트롯의 결승에서 시도된 전화 문자투표에 773만여 통이 걸려와 집계불능으로 최종 결과발표를 이틀 뒤에 해야 하는 대형사고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주최 측의 예상착오가 빚은 사고였지만, 여기서도 트롯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트롯에 대한 대중의 인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방송사들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스터트롯과 비슷한 시기에 ‘보이스 퀸’을 방영했던 종편 MBN방송이 후속으로 ‘라스트 싱어’를 방영 중인 것을 비롯, 공중파인 SBS가 ‘트롯 신이 떴다’, MBC가 ‘나는 트로트 가수다’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성공의 일차적 비결은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지망생을 발굴한 것에 있었다고 하겠지만 가수의 감성을 대중의 가슴에 전달하는 과정에 발휘된 창의적인 노력도 돋보였습니다. 심사방법을 다양화하고 진행에 쇼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재미를 더하는 것과, 특히 노래에 스토리를 입히는 역량이 탁월했다고 여겨졌습니다.

대부분 서민 가정출신의 미스터트롯 결승진출자 7인은 10대의 중학생에서 40대에 이르는 젊은 인생들이지만 그들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재능은 충분한 감동의 소재였습니다. 그들이 결승전 마지막 곡으로 부른 노래는 자기의 스토리를 얹힌 ‘인생곡’이어서, 원곡 가수도 줄 수 없는 공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우승자 임영웅이 자신의 인생곡 ‘배신자’가 5세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애창곡으로, 어머니를 홀로 남기고 떠난 ‘배신자 아버지’를 그리는 노래라고 말할 때, 4위를 한 김호중이 탈선의 기로에서 자신을 잡아준 고교 은사를 찾아가 ‘고맙소’를 부르게 된 사연을 말할 때는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졌습니다.

3위를 한 이찬원이 대구에서 막창구이집을 하는 아버지와 전화로 ‘십팔세 순이’를 결승곡으로 선곡하는 모습에는 훈훈한 가족애가 있었습니다. 2위 박영탁이 부른 ‘막걸리 한 잔’에는 무명 가수인 ‘천덕꾸러기 막내아들’의 효심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의 트롯열풍이 한 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K-팝의 창의가 트롯의 영역에도 접목돼 한국의 트롯이 세계인의 가락이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각종 매체들이 모방 프로그램을 쏟아내 대중을 식상케 하지 않기도 바랍니다.

나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 중학생이 포함된 가수들이 대중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가수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스타들의 그늘 밑에 가려진 무수한 가수 지망생들에게도 햇빛이 비칠 날이 오기를 또한 바랍니다. 트롯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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