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논객칼럼=이영환]

정부는 코로나19로 전대미문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준다는 취지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으며,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도 거의 확정했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긴급재난지원금의 큰 골격은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경우 4인 가구 기준 본인부담금 월 23만 7652원, 지역보험 가입자의 경우 4인 가족 기준 본인부담금 월 25만 4909원을 상한으로 설정해 우리나라 전체 2000만 가구 중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1400만 가구에 대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게 된다. 여기에 소요되는 총예산 9조 1000억 원 가운데 2조 원은 지자체가 분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외출 자제, 집회 자제, 상점 폐쇄, 여행 자제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1929년 대공황 때보다 더 충격적인 경기침체가 예상되며, 실업률 또한 당시 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경우 단기적으로 2/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대비 마이너스 20%에서부터 35%에 이를 것이라는 참담한 전망도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19라는 한낱 바이러스에 의해 그동안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온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토록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경제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으면 바이러스의 전파를 늦출 수 없다는 딜레마를 피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현재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경기침체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는 약간의 재정적 지원을 통해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한 국민을 위로한다는 차원에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원금은 신속하고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확정해 시행하려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픽사베이

우선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기준으로 채택한 것은 신속한 집행을 위한 방편이라는 점에는 수긍이 간다. 그러면서도 부담금을 단 1원이라도 더 내는 사람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이로 인해 소득 역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형평성에 어긋날 것이다. 또한 소득은 별로 없으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는 반면, 재산은 거의 없으나 비교적 소득이 많은 사람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이 또한 형평성에 어긋날 것이다. 그밖에도 형평성의 차원에서 여러 가지 이의가 제기될 소지가 충분하다. 게다가 독일이나 미국 등 유사한 지원방안을 실시하려는 나라들이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에 비해 우리는 선거로 인해, 그리고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5월이 되어야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발상을 전환하면 일정을 앞당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시도할 가치가 있는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 배경에는 우선 이번 기회에 헌법에서 명시한 원칙대로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의 고압적인 태도의 잔재가 무의식에 남아 있어서인지 일부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정부가 시혜를 베풀면 국민은 그것을 감지덕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적 재난이 있는 경우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권한이 아니라 의무이다. 의무를 다해야 하는 사람은 진정한 책임감과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주인을 위한 최선의 방안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주인인 국민보다는 대리인인 자신의 평판을 우선시하는 행위로서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에 해당된다.

필자는 이번에도 이런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가 이번 조치를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용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는 것은 필자가 지나치게 민감한 탓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형평성 관련해 필자는 더 큰 그림을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햇빛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골고루 비춘다는 말이 있듯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70%로 한정하지 말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고위 공직자, 그리고 재벌총수를 비롯해 많은 전문경영자와 임직원, 나아가 고소득을 올리는 많은 자영업자들이 모두 포함될 것이다. 이것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지원한다는 형평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감염되는 경우 이로 인한 고통 또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반드시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필자의 진정한 의도는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데 있지 않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지원금을 지급하되 한 가지 조항을 추가하자는 데 방점이 있다. 그것은 지원금을 받지 않아도 생활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해 자발적으로 지원금을 양보하는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때 절차가 복잡하면 이런 취지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니 간단한 절차로 끝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이 업무를 담당한 부서의 홈페이지에 창을 하나 만들어 지원금을 양보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름과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모든 절차가 끝나도록 하면 된다. 동시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의사표시를 할 수 있도록 병행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 취지에 동의한 사람은 세대주로서 가구를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지원이 확정된 가구에게 정부의 안대로 가구원수에 따라 지원금을 지급하면 될 것이다. 만약 가구 수 기준 30%가 자발적으로 양보한다면 결과적으로 70%의 가구가 받는 지원금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 이상 양보한다면 나머지 가구에 돌아가는 지원금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기대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필자가 이런 방안을 제안하는 이유는 이번 기회에 우리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연대(solidarity)와 공감(sympathy) 능력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 가늠해보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나 슈퍼박테리아가 인류를 공격하는 사건은 앞으로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전문가의 주장에 의하면 동물의 몸에는 100만 종이 넘는 바이러스가 기생하고 있으며,이들 가운데 일부는 언제라도 돌연변이를 통해 인간을 공격할 수 있다고 한다. 슈퍼박테리아 또한 모든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면서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과 같이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앞으로 종종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누구를 지원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갈등을 조장할 수 있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자체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가부장적이고 온정주의적인 정부에 대한 미련을 버릴 때가 되었다.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의 결정과정에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한 국민 각자가 자발적으로 의사표시를 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발적으로 양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가 쓴 『넛지(Nudge)』라는 책에 의하면, ‘넛지’는 ‘슬쩍 옆구리 찌르기’란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 제도를 조금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변경하고 그럼으로써 더 나은 결과를 얻으려는 시도를 지칭한다. 필자의 생각은 바로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에 넛지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해당 부서의 홈페이지에 <긴급재난지원금 양보하기>라는 체크 코너를 만든 다음 체크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옵트인(opt-in)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같이 한 번 클릭하는 것조차 번거롭게 생각해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일정한 기간, 예컨대 일주일의 기간을 정해 이 캠페인을 실시하면서 취지에 동참한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준다면 더 큰 호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카톡, 페이스북 및 트위터 등 각종 채널을 이용해 홍보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여기 동참할 것이다. 만약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호응한다면 코로나19로 황폐해진 마음을 상당히 위로해 줄 것이다. 당장 일주일 정도 기간을 정해 이 방안을 실시한 후 최종적으로 지원금을 받을 가구 수가 집계된다면, 선거 후 바로 추경안을 통과시켜 이들에게 4월 중에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코로나19와 유사한 사태가 종종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어려운 상황은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를 비롯해 불평등의 악화, 파괴적 혁신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 등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들 하나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 연대, 공감 및 협력을 촉진하는 공동선 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구성원들 간 이해관계의 충돌로 문제 해결은 기대난망이다. 예컨대 기후변화의 진위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으로 인해 기후변화를 저지할 시기를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연대와 협력의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욱 악화되면 장차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이런 위기를 초래하는 또 다른 복병으로 등장한 것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다. 이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는 힘의 원천은 사회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고 협력하려는 의지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이런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고양시키려는 노력이다. 대한민국은 이번 사태에 가장 모범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나라로 국제사회에서 칭송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추가로 재난지원금 지급이라는 면에서도 국제사회의 귀감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공유광장(www.iksa.kr) 운영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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