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현의 사소한 시선]

[청년칼럼=양재현]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인싸가 되는 법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한창 현역으로 활동하던 때의 이야기다. 홍진호 선수에 대한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댓글창에는 항상 같은 댓글이 두 개씩 달리곤 했다. 시스템의 오류나 특별한 html 태그 때문은 아니었다. 홍진호 선수가 중요한 경기마다 2등을 하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었던 것에 빗대어 네티즌들이 같은 댓글을 꼭 두 번씩 다는, 일종의 놀이문화였을 뿐이다.

당시 나는 스타크래프트에 별 관심도 없었고 그의 경기를 본 적도 없었지만, 게임 커뮤니티에 어렵지 않게 녹아들 수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홍진호의 글이 올라오면 댓글을 두 번 단다”는 행동 양식을 알고 따르는 것. 그것이 게임 커뮤니티의 인싸가 되는 법이었다.

2020년. 30대 중반에 접어든 내 머릿속에는 학창시절에 배웠던 지식의 대부분이 증발된 지 오래다. 거기다 주변에 수험생도 없기에, 요즘 애들은 어떤 교육과정을 밟는지, 어떤 과목을 배우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딱 한 마디만 알고 있으면 된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에 불기 시작한 인싸 열풍. 인싸가 되기 위한 방법은 수 백, 수 천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인싸라면 기본으로 마스터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밈(MEME)’이다.

픽사베이

인터넷 시대의 속담이자 비유, 밈

놀랍게도 밈은 본래 학술적 용어다. 1976년에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간단하게는 ‘비유전적 문화요소’로 말할 수 있다. 문화적 양식, 관습, 건축, 종교 등 인류가 축적해 온 수많은 문화유산은 대부분 누군가 한 가지를 모방하고 복제하며 전달되어 왔다. 이 때, 그 모방이나 복제 거리가 되는 문화 단위들이 바로 밈에 해당한다.

단번에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 개념이 인터넷으로 옮겨 가면서 엄청난 활용도와 커버리지를 가지게 되었다. 어느 방송에서 나온 연예인의 말 한 마디, 커뮤니티에 올라온 재미있는 글 속 한 문장, 어느 영화에서 만들어진 임팩트 있는 캡쳐 한 장. 이것들이 사람들에게 퍼지고, 이를 보는 사람은 이를 또 복제하여 퍼뜨린다. 최근 유행하였던 박미선의 “00은 내가 할게, 00는 누가 할래?”와 같은 유행어나 ‘슬픈 개구리’ 이모티콘, 아이돌 팬들이 많이 만드는 “000 입덕 영상” 등이 모두 이러한 밈에 속한다.

어찌 보면 이는 인터넷 시대의 속담이자 비유라고도 할 수 있다.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간 것에 빗대 ‘삼고초려’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가 배신자를 말하는 대표적인 비유가 된 것처럼, 21세기의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아는 상황에 빗대 새로운 속담과 비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근대 소설 속 인싸들의 필수 교양이 속담과 비유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었듯, 현대 인싸들의 필수 교양은 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밈’은 인싸로 사회화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교과서이자, 어떠한 상황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밈만 사용하면 인싸의 반열에 들 수 있는 MSG 같은 존재인 것이다.

맥락은 사라지고 복제만 남았다

그러나 문제는, 밈이 복제되는 과정에서 맥락이 사라져 버리고, 밈 자체가 가지는 자극만 남는다는 것에 있다.

홍진호가 2등 징크스로 인해 슬럼프를 겪었다는 글에서조차 같은 댓글 두 번 달기가 계속되며 그들의 댓글 놀이는 계속되었다. 코로나19를 설명하는 의학전문가의 글에서도 “문송합니다”를 다는 인싸 놀이가 이어진다. 섭식장애로 겪은 고통을 고백하는 유튜버의 영상에는 유튜버가 덩치가 있다는 이유로 “햄최몇(햄버거 최대 몇 개?)”이라는 댓글을 달며 키득거린다.

모든 밈은 처음에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맥락 속에서 복제된다. 하지만 복제가 거듭되다보면 어느 새 맥락을 벗어나는 곳에까지 복제되어 퍼지고, 결국 처음의 맥락은 사라진다. 맥락이 사라졌기에 그 밈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윤리적인지 비윤리적인지는 따질 수 조차 없다.

맥락은 사라지지만, 그 밈이 가졌던 자극은 남아있다. 특정 키워드, 특정 내용이 담겨있는 곳에는 맥락과 상관없이 무조건 밈을 달고, 그것은 놀이가 된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극이 오면 반응하는 조건반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에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선후관계, 인과관계, 우선순위 파악과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진짜 사회화’의 요소들은 조건반사가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무의미해진다.

인싸가 되기 위해 선택한 그 밈, 진짜 당신의 말인가요?

2019년 성공한 광고들도 대부분 밈을 차용한 광고라고 한다. 2020년, 기업들이 마케팅 전략으로 ‘밈’을 선택했다는 기사들이 뜬다. 광고효과도 꽤 있는 듯하다. 유튜브에 나오는 광고를 볼 때마다 피식 웃으면서, 동시에 불편한 감정도 든다. 이렇게 ‘밈화’ 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과연 괜찮은 걸까?

밈이 무분별하게 오고가는 상황 속에서 당연하게도, 누군가는 상처받는다. 그러나 상처를 호소한들 돌아오는 말은 뻔하다.

“다들 쓰는 거라 나도 썼다”

“밈은 밈일 뿐 상처받지 말자”

차라리 악의를 가지고 쓴 말이라면 그 악의를 받아칠 수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생각이 제거된 채 복제되는 밈에서는 악의와 같은 고차원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말초신경에서 나오는 ‘웃김’이라는 자극만이 있을 뿐이다.

인싸 열풍 속, 우리가 선택했던 밈을 통한 사회화. 그 부작용은 이미 숱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조건반사처럼 내뱉던 밈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생각이 담긴 말을 내뱉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 없이 밈을 내뱉을 때와 달리,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 것은 자칫 아싸로 빠질 수 있는 리스크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당연히 거쳐야 하는 사회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실수하고, 비판받고, 고치는 것. 최근 몇 년 간 밈에 외주를 맡기면서 스킵했던 그 과정, 이제 다시 가져올 때다.

 

양재현

사소해 내놓지 못했던 시선.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시선.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