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세상만사]

[논객칼럼=이대현]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다

사람들끼리 적당한 거리를 두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현재로는 이보다 더 나은 방책은 없다. 마스크를 하고, 틈만 나면 손을 씻기 전에 바이러스가 건너오지 못하게 서로 멀찍이 떨어지는 것이 최상이다. 꺼림칙한 것은 그 말이다.

말이란 게 참 묘하다. 권위가 있거나 유명한 누군가 먼저 꺼내면 따라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국에서 급증하던 2월말, 한 감염병 전문가(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인 기모란 교수)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사람간의 접촉 줄이기’를 제안하면서 처음 이 말을 썼다. 그의 제안에 공감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여졌다.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쓰고 있고 언론, 전문가, 국민 모두가 이 말이 ‘공간적으로 서로 일정한 거리두기’란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면 됐지, 무슨 문제인가. 물론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말이란 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쓰면 그만이다. 신조어도 그렇게 만들어져 일상어가 되고, 표준어가 된다. 이제 와서 굳이 시비를 가리고, 의미를 따져서 바꾼들 혼란만 가져오고, 소통만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에는 꺼림칙하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난 뒤에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 말이 우리에게 어떤 인간적, 사회적 심리로 이어질지 겁난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사회’는 단지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어울리는 ‘물리적 공간’이란 의미를 가진다. 기모란 교수도 그것만 생각하고 ‘사회적’이란 말을 썼을 것이다.

서울시내에 내걸린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현수막 @오피니언타임스

언어가 사고와 의식을 지배한다

문제는 ‘사회적’이 가진 다의성(多義性)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공간에 서로 어울려 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에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심리적, 감정적, 의식적 공간도 함께 있다. 우리의 잠재의식과 의식은 ‘사회적’이란 기호(언어)를 그렇게 해석한다. ‘거리’역시 ‘공간적 위치’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ing)’의 원래 개념도 물리적 공간 개념과 거리가 멀다. 1924년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가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개인과 개인, 집단 간의 관계를 특정 짓는 친밀도’를 말한다. 거리 역시 심리적, 감정적인 것이다. 사회적 거리는 지하철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보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친구가 훨씬 가깝다. 물리적 거리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사회적 거리는 개인을 넘어 계급, 인종, 국가, 성별, 세대 간에도 가까울수록 좋다. ‘코로나19’가 어느 한 곳 가리지 않고 지구촌 전체를 공포와 고통으로 몰아가고, 어느 한 집단, 민족, 국가의 힘으로 극복이 불가능한 지금은 더 더욱 필요하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그것을, 나아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의 ‘사회적 거리’까지 좁혀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맞다

지금부터라도 ‘물리적 거리두기’라고 해야 한다. 정부와 언론부터 그렇게 하면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바꾸겠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코로나19 전염을 피하기 위한 물리적 고립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얼마든지 ‘사회적 거리’는 좁힐 수 있는 세상이다.

무심코 쓰는 말, 그에 따른 단순한 목적의 행동이 의식과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을 떠올리면서 사람을 피하고,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는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다. 불가피하고 일시적인 선택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고립과 경계와 불신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와 영향을 가져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만큼이나 그것이 사라진 이후의 우리 모습 역시 두렵다.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내가 문화다>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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