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대 총선의 선거 결과를 두고 그동안 많은 분석과 해석, 견해가 제출됐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공감가는 대목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약간 미진하다고 느낀 것이 더러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야당의 ‘한미FTA 폐지’ 주장이 선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문제다. 새누리당의 152석 확보와 민주통합당의 127석 차지가 곧 여당의 승리이자 야당의 패배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일단 받아들인다는 전제 위에, 야당의 FTA 반대가 선거의 열쇠를 쥔 중간층을 돌려세웠고 결국 승패를 가르는 최대의 변수가 되었다는 것이 나의 시각이다.

우선 이에 앞서 여당과 야당이 각각 얼굴로 내세운 리더십에 있어 격차를 보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는 지난 2010년 서울시장선거 토론에서 당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게 크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등 자질 부족이라는 평을 받았다.
 
비록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2건의 수뢰사건 기소로 도덕성 차원에서 흠집이 난 것도 사실이다. 또 이번 총선 공천과정에서 개인적 야심을 드러냈다는 일부 비평도 도움은 안됐다.

게다가 한 대표가 ‘보편적 복지’라는 매력적인 정책상품을 내려놓고 FTA 폐지라는 공감대 약한 구호를 내걸은 것이 최대의 악수였다. 그 뒤 선거운동기간 중 슬그머니 FTA 폐지론을 재협상론으로 바꾸는 대신 ‘MB 심판’이라는 만능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약발이 없었다.
 
MB 심판은 그동안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때로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문제처럼 핵심현안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어 이를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유권자에게 거의 먹히지 않은 것이다.
 
  

 
한미FTA는 2007년 협상타결 때는 미풍이었던 반대운동이 2011년 비준안 통과 때는 태풍으로 바뀌면서 국론이 크게 갈렸다. 여기서 눈여겨 볼 일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FTA 여론조사에서 거의 매번 찬성이 반대보다 높다는 일관된 결과를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국민 다수는 FTA의 잠재적 문제점을 인지하면서도 대국적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법률용어와 난삽한 개념, 혼란스런 주장과 엇갈리는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전문가도 아닌 그들이 어떻게 그런 판단을 했을까?
 
그 대답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엘리트계층보다는 일반 대중이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다는 데 있다고 본다. 1948년 정부 수립 직전 돈암장에 머물던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누군가 찾아와 “조선과 미국의 차이가 뭐냐”고 묻자 “일반 백성은 조선이 오히려 수준이 높은데 지도층은 미국에 상대가 안된다”고 했던 현상이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는 셈이다.

한미FTA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지만 두 가지 측면을 덧보태고 싶다. 첫째 한미FTA는 한국에 대해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보이는 미국을 달래기 위해 약간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타결이 됐다는 시각이다.
 
한국은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해 미국 등 선진국에 완제품을 수출하고, 중국에다 부품 및 반제품을 수출해 미국시장에 내다파는 통상구조가 온존하는 한 대미흑자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국 소비자에게 값싼 제품을 공급하고 월마트 같은 글로벌 유통업체에 이득을 안겨준다는 이유로 이를 용인했던 미국이 지난 10여년의 중동개입을 끝내고 차후 대중국 견제를 본격화하면서 무역적자 감소를 추구하면 언제라도 통상제한으로 돌아설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FTA가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예컨대 한국이 자동차 수입관세를 없앤다 해서 한국 소비자가 미국차를 대량 구입할 가능성은 낮은 반면 미국의 관세인하로 한국 차의 미국시장 진출은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한국 쪽의 또 다른 계산이다.

둘째, FTA는 국내적으로 국내산업을 위해 높이 세웠던 보호막을 어느 정도 걷어냄으로써 글로벌경쟁에 노출시키고 결과적으로 국내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1960년대 경제개발을 본격화한 이래 “파이를 나눠먹기에 앞서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경제개발논리상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고 수출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낮은 품질과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설교였다. 그런데 FTA는 이제까지의 국내 생산자 보호 위주에서 소비자 보호로 어느 정도 돌아선다는 의미가 있다.
 
예컨대 농민과 농업 보호를 위해 국내산 농산물을 먹어왔지만 FTA가 발효하면 값싼 외국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농민은 다소 손해를 보지만 다수 도시 서민은 상대적 혜택을 보게 된다.
    
 
지난 201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일부 보수 언론의 주장에 동조해서 ‘무상급식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면서 주민투표를 감행했다가 큰 낭패를 봤다. 한나라당은 투표 결과에 아랑곳없이 나경원 후보를 내세워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가 더욱 심각한 패배를 맛봤다.
 
여기서 한나라당이 이해 못한 것은 서울의 중산층이 “세금만 내고 정부로부터 어떤 형태의 혜택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점심 한 끼 제공하는 것마저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버린 한나라당에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2012년 4·11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이 같은 맥락의 우를 범했다. 중산층의 다수는 한국이 무역으로 살아가는 나라이고, 미국 중국을 가릴 것 없이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농민 보호 등의 명분에 대해 누구도 반대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국민 가운데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 서민대중이 계속 희생해야 하는 데 싫증을 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은 50만~ 1백만명의 소셜미디어 적극이용 계층의 ‘그룹토크’에 휘말려 민생이슈를 외면한 것이다.
 
미국의 케네디행정부가 하버드대 출신 엘리트들의 ‘집단사고(Group Think)’ 때문에 현실을 모르고 피그스만 침공이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과 같이 ‘나꼼수’ 등 천민진보주의적 성향의 그룹에 둘러싸여 자기들끼리만 신나는 소통을 한 것 아닌가 싶다.

‘김용민 막말파문’이 최대의 변수였다는 논자들이 많다. 물론 박빙의 선거구에서 선거전 막바지에 불거진 스캔들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마 승패가 이 때문에 뒤집힌 곳이 많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 성향의 인터넷매체에서 심한 말을 한 후보가 야당 후보로 출마했다고 해서 민주당 지지자가 새누리 지지로 선회한다는 것은 경험칙 상 납득이 안 간다. 지지하려다 관망으로 돌아섰거나 실제 투표에 기권한 유권자는 더러 있을지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강정마을과 관련해 해군을 ‘해적’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일개 통합진보당 당원의 발언이 상당수 유권자들의 감정을 건드릴 수는 있어도 지지를 바꿨다고 믿기는 어렵다.

결국 2011년에 한나라당이 저지른 잘못을 2012년 민주통합당이 반복했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겉으로는 별 상관이 없고 오히려 상반된 입장처럼 보이지만, 무상급식 반대와 FTA 반대는 기실 똑같이 민생을 거스르는 이념적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국민 대중보다 자신들이 더 똑똑하다는 착각과 승기를 잡았다는 정당들의 오만, 그리고 이념에 사로잡힌 관념론자들이 그득한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의제설정에 상상력이 빈곤한 정치인들이 맹종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고 싶다. “민생이라고 하면 시장이나 노동현장 같은 찾아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아, 사람들은 팍팍한 삶과 희망없는 미래에 너무나 지쳐있어. 포퓰리즘 타령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 이제 그만 두고, 일생에 한번 우리한테 도움되는 일을 해봐.”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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