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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一場春夢)의 꽃, 깽깽이풀![김인철의 들꽃여행]
김인철 | 승인 2020.04.16 07:25

[논객칼럼=김인철]

화창한 봄 날씨만큼 화사하게 피는 깽깽이풀. 하늘을 향해 활짝 펼친 꽃잎 가운데 수술의 꽃밥 색이 노란색(사진 위)과 자주색(아래)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김인철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

벚꽃이 집니다. 유례없이 빨리 피었다더니 어느새 천지에 낙화가 분분합니다. 4월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날리는 벚꽃 잎에 실려 봄조차 떠나갈 성싶습니다. 과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대명사답습니다. 한데 벚꽃보다 더 덧없는 봄꽃이 있습니다. ‘한바탕의 봄 꿈’인 양 찰나의 순간 스러지는 봄 야생화가 있습니다. 물오른 꽃봉오리는 햇볕 좋은 날 순식간에 벌어지는데, 얼마나 가냘픈지 바람만 조금 강해도, 휘~ 봄비라도 스치면 보고 있는 순간에도 우수수 꽃잎을 땅에 떨굽니다. 이를 두고 한 동호인은 ‘깽무사흘’이란 우스갯말을 합니다. “깽깽이풀 꽃은 사흘을 가지 못한다.”

@김인철

그러나 야리야리한 그 꽃이 얼마나 예쁜지 한 번 본 이는 해마다 봄이면 자생지를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맵니다. 꽃은 4~5월 잎이 나기 전, 높이 20~30㎝의 꽃줄기 끝에 지름 2cm 정도의 원을 그리며 하나씩 핍니다. 그런데 활짝 핀 꽃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기온이 차면 한낮까지 기다려도 꽃잎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향해 활짝 벌어지는 6~8개의 꽃잎은 연보랏빛을 띠는데, 봄날의 아련한 정취와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꽃 중앙에 자주색 또는 노란색의 꽃밥을 가진 수술 8개와 암술 1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렬한 봄 햇살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깽깽이풀. 어둠 속에 빛나는 보석 같다. @김인철

누구를 만나려고

보랏빛 맑게 단장하고

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추며 기다리나.

 

내려보고 올려보고 비껴보며

내 가슴은 울렁울렁

보랏빛 물드는데

너는 무심하게 피어올라

하늘만 쳐다보네. ( 오종훈의 시 ‘깽깽이풀’에서)

@김인철

깽깽이풀은 주로 산 중턱 아래 낮은 숲에서 자랍니다. 즉 민가와 가까운 곳에 자생합니다. 그러다 보니 뿌리를 캐 약재로 팔겠다거나 관상 가치가 높은 꽃을 자기만 보겠다며 남획하고 자생지를 훼손하는 나쁜 손이 많아 한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었습니다. 다행히 다량 번식 등 인위적인 증식이 가능해지면서 전국 각지의 웬만한 식물원·수목원 등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고,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쁘고 귀한 깽깽이풀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정겹기 그지없지만 연원(淵源)이 모호한 우리말 이름이 원인입니다. 깽깽이풀은 한두 송이가 외따로 자라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십 송이가 뭉쳐서 여기에 한 무더기 저기에 한 무더기 핍니다. 먼저 이런 생육 특성에 한글 이름의 유래와 번식의 비밀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에서 한 발로 껑충껑충 뛰는 깽깽이걸음을 떠올리고 깽깽이풀이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는 설이지요.

꽃만큼 예쁜 잎. 가장자리가 물결이 치고 반질반질한 게 연잎을 똑 닮았다 해서 황련(黃蓮)이니 선황련(鮮黃蓮)이니 하는 한자어 생약명을 얻었다. @김인철
@김인철

또한 깽깽이풀이 띄엄띄엄 자라는 것은 당분이 함유된 씨앗을 개미들이 좋아해 개미집으로 운반해 가는 도중에 여기에 하나 저기에 하나 떨어뜨리면서 자연스럽게 분산 발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4월 농부들이 만개한 이 꽃을 보면 ‘깽깽이’(해금이나 바이올린을 낮춰 부르는 말) 켜며 땡땡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긴 잎자루 끝에 하나씩 달리는 잎 또한 꽃 못지않게 눈길을 끕니다. 잎은 꽃보다 다소 늦게 나는데, 그 수가 많아 꽃보다 풍성합니다. 길이와 폭이 각 9cm 정도로 제법 널찍한 심장형 잎은 물결 모양의 가장자리와 반질반질한 표피 등이 연잎과 많이 닮았습니다. 바로 이 잎 모양에서 <동의보감> 등 옛 문헌에 나오는 황련(黃蓮), 모황련(毛黃蓮), 선황련(鮮黃蓮) 등의 한자 이름이 연유합니다. 뿌리는 노랗고, 연잎을 닮은 풀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에는 ‘ᄭᅢᆼᄭᅢᆼ이닙(깽깽이입)’, <조선식물향명집>(정태현 외 3인)에선 ‘깽깽이풀’이란 한글 이름이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본즉, 약재 이름을 한글화하면서 입에서 ‘깽깽’대는 신음이 나올 정도로 맛이 쓴 뿌리를 약재로 쓰는 풀이라는 의미에서 깽깽이풀이란 이름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지요.

개미가 먹잇감으로 운반하다 듬성듬성 떨어뜨려 군데군데 핀다는 깽깽이풀. 아름답기로 봄꽃 중 으뜸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김인철
@김인철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름의 연원을 놓고서는 설이 구구하지만, 아래 견해에는 선뜻 동의합니다.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깽깽이풀을 한 번 본 이는 누구나 그 매력에 푹 빠져든다. 토종 야생화 중 아름답기로 으뜸이다.”

제주도와 남해 섬을 빼고 전국에 분포합니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자생지는 경북 의성의 고운사와 대구 달성군 본리리, 강원 홍천군 방내리 주변 야산 등입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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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  atomz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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