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한다면 종합적인 연관관계 하에서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사물을 따로 떼어 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물을 분리해서 보면 분리된 그 부분만 보이고 전체가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보는 것이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는 것인가 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특히 몸살림운동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보는 것이 몸을 총체적으로 보는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지요. 지금 한방(韓方)에서는 양방(洋方)에 대해 사람의 몸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보기 때문에 전체적인 연관관계 하에서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합니다. 반면 양방에서는 한방에 대해 음양오행이라는 전근대적이고 비과학적인, 따라서 아무런 근거도 없는 방법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이 하나로 통합돼 있기 때문에 이런 대치가 없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두 방법이 완전히 분리돼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두 주장이 평행선을 그으면서 대립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주장 중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요?

저는 두 주장에 일리가 있기도 하고, 틀린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면 타당성이 있는 반면, 일면 잘못 보고 있는 측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전개돼 왔으며, 이에 따라 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 왔는가를 검토해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하는 생각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한번 사고의 패러다임이 바뀌려면 아주 긴 시간이 걸립니다. 이 때문에 사람의 생각의 변화에 따라 시대를 구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선 한방에서 양방을 비판하는 부분에 대해서 보면, 양방이 현재 사람의 몸을 전체적인 연관관계 하에서 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옳은 지적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짚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양방이라는 말은 서양에서 들어온 방법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정확한 용어로 표현하자면 현대의학이 될 것입니다. 현대의학이란 서양의 고대의학이나 중세의학, 근대의학이 아니라 바로 최근에 이루어진 현대의 의학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는 대체로 20세기 이후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 직전의 의학을 근대의학이라고 합니다. 19세기까지 서양에서 발전한 자연과학을 토대로 해서 사람의 몸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가 이루어졌고 기술도 많이 발전했는데, 이를 토대로 해서 성립한 의학이 현대의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의학은 자신을 과학적인 의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대의학이 다른 의학은 과학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다른 의학의 체계는 자연과학이 아니라 나름대로 그 사회에서 형성된 전통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졌다고 해서 전적으로 옳은 것으로 보거나, 전통적인 방법은 모두 틀렸다고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의학이 사람의 몸을 보는 방법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고, 전통적인 방법에는 그 방법이 만들어지는 기간 동안 경험에 의해 입증된 좋은 성과물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학은 분명히 몸을 쪼개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의학이 예전부터 몸을 쪼개서 본 것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는 몸의 균형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중세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근대에 들어 과학이 발전하면서 몸을 세분해서 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몸의 기관(organ: 조직이 모여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된 부분)을 발견했고, 다음에는 조직(tissue: 구조와 기능이 비슷한 세포집단과 세포간 물질로 구성되는 다세포 생물 구성의 한 단계)을, 다음에는 세포(cell: 막으로 둘러싸인 생물체의 구조 및 기능의 기본 단위)를 발견했습니다. 점점 더 미세한 단위까지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분자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세포 수준에서 화학적으로 분석하게 됐습니다. 현재 현대의학은 분자생물학을 기초로 해서 성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본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는 것은 사람의 몸에 대해 한 단계 진전된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 줍니다. 문제는 이렇게 보는 것에 한정돼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전체적인 연관관계를 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슷한 성질의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모여 기관을 이루고, 기관이 모여 기관계를 이루고, 이런 기관계가 모여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척추동물의 경우에는 피부계, 골격계, 근육계, 신경계, 내분비계, 소화계, 호흡계, 순환계, 배설계, 생식계 등 10가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의 협동으로 인해 떠오르는 집단 성질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물리학계에서 논의되기 시작하고 있는 복잡계 이론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세포가 모여 조직이 되면 협동을 하면서 세포 하나로는 가질 수 없는 성질을 갖게 되고, 조직이 여러 개 모여 기관이 되면 협동을 하면서 조직 하나로는 가질 수 없는 성질을 갖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기관이 여러 개 모이면 기관 하나로는 가질 수 없는 성질을 갖게 되고, 더 놀라운 것은 기관계가 모이면 서로 협동을 하면서 하나의 생명체로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이렇게 개별 세포부터 시작해 기관계까지 서로 협동을 하면서 하나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개별 세포로서는 가질 수 없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독특한 생명체가 됩니다. 단세포 생물은 그 나름대로 여러 분자가 모여 협동하면서 독특한 생명체 현상, 즉 집단성질을 나타내고, 다세포 생물은 또 이런 단세포가 모여 협동을 하면서 독특한 생명체 현상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사람의 몸을 볼 때에는 이런 협동으로 인한 집단 성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이런 협동으로 인한 집단 성질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개별 세포 내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주로 분자생물학에 기초해 개별 세포의 이상 유무로 사람 몸의 이상 유무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지럼증을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현대의학에서는 어지럼증을 귓속에 있는 세반고리관에 이상이 생겨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어지럼증은 대개 세반고리관과는 상관없이 생겨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학에서는 어지럼증을 거의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반고리관은 몸의 균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대의학은 이에 대해 세포 수준에서 그 기제를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현대의학의 큰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럼증을 거의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지럼증을 세반고리관만의 문제로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현대의학의 맹점이 있습니다. 우리 몸의 협동으로 인한 집단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연관관계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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