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청년칼럼=시언]

나는 ‘그’ 학과 출신이다. 학과 홈페이지에 학생들이 ‘가업 물려받기’가 유망 직종이라며 자학글을 써댄다는 바로 그 학과. ‘군자가 무엇인지 논하라’는 시험 문제에 “소인이 어찌 군자의 도를 논하리오” 한 문장 써갈겨 내면 교수님이 무릎을 치며 A+를 수여한다던 전설의 꿀(?)전공. 미국 유명 코미디언이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식으로 취업할 수 있는 곳은 고대 그리스뿐이라고 디스했다던 바로 그곳. 철.학.과. (방금의 ‘썰’들을 실제 철학과 출신들에게 실습하는 우를 범하진 않길 권장한다. 자학 개그는 본인이 할 때만 개그일 수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머리를 자르러 시골 본가의 미용실을 찾았을 때를 기억한다. 한 명의 단골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영업 전략이었을까. 40대의 여자 원장은 가위질만큼이나 분주한 입놀림으로 내 신상정보를 캐물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가 ‘인서울’ 중 하나라는 사실까지 알아낸 그는 이 시골에서 인서울이라니 대단하다며 비행기를 태웠다. 나도 거기까진 나쁘지 않았다. 내 전공 학문이 무려 ‘철학’임을 밝히기 전까지는...

“철학과? 대단하네~ 그거 진짜 배우기 어렵다던데.”

“어? 철학과 아세요? 보통은 잘 모르...”

“그럼 알지~ 이름 지어주고 사주 봐주고 하는 거잖아. 공부 은근 많이 해야 한다더라 그거?”

이미 당신의 단골 유치 전략이 ‘폭망’했음을 알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불굴의 영업 정신을 지닌 입지전적 인물이어서였을까. 당황을 넘어 썩어가는 내 표정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이미 패색이 짙게 깔린 전황의 반전을 꾀했다.

“아...아~ 내 정신 좀 봐. 철학과가 그 철학관의 철학이 아니지?”

“...아 네 그렇죠.”

“그럼 철학과에선 뭘 배우는 거야? 하늘에 별자리 이런 거?”

그쯤되면 졸업반 때는 장풍도 쏜다고 맞장구를 칠 걸 그랬나. 소심했던 나는 쓴웃음만을 남긴 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허름한 미용실을 나섰다. 하지만 그가 던진 한 마디 질문은 그 후 9년이 넘도록 나를 따라다니는 묵직한 화두로 남았다. 그래서 난 철학과에서 뭘 배운걸까? 철학자들의 연대기나 주요 이론 같은 건 유튜브와 책에도 얼마든지 있는데. 도대체 뭘?

픽사베이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교수님”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을 강조하기에 철학과 과목을 청강하게 됐다던 한 타학과 학우는 "한 학기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뭐였냐"는 교수의 질문에 모 학생의 당돌한 발언을 꼽았다. 학사가, 아니 학사 학위를 따기 위해 노력중인 일개 학생이, 박사 학위를 비롯해 수많은 학술상을 거머쥔 교수에게 반론을 편다? 그것도 조심스레 연구실로 찾아가서가 아니라 수십명의 학우들이 지켜보는 강의실 바로 그 자리에서? 개강부터 종강까지 교수의 지식을 전수받는 것에 익숙했을 타학과 학생이 보기엔 확실히 충격적인 풍경이었을 법도 하다. 받아적는 것도 모자라 녹음하고 녹취록 풀기도 바쁜데 이미 질 게 뻔한 반론이나 던지고 앉아있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과 학생들은 오늘도 손을 치켜들고 나름의 반론을 편다. 수업 태도 점수는 ‘얼마나 옳은 의견을 많이 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느냐’로 판가름 된다. 질문이나 반론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상관없다. 강사는 학생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진지하게 재반박한다. 둘 간의 논쟁이 기타끈처럼 팽팽해지면 제3의 학생이 손을 들고 참전하기도 한다. 이에 교수는 아예 해당 논제를 화이트보드에 쓰고 오늘 수업의 토론 논제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재밌는 주장이네요, 남은 시간은 이 주제를 갖고 다같이 얘기해 보죠’. 이런 태도가 몸에 뱄으니 예부터 어른들이 철학과 출신들만 보면 입만 살았다고 혀를 끌끌 차신 것도 이해가 간다.

논증 내에서 자기모순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발언, 반박도 허용된다. 매일 옆자리에 앉는 동기여도 입장이 다르면 기꺼이 반대편에 선다. 동기와 얼굴이 불콰해지도록 논쟁하다가도 수업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이 학식 돈가스를 썰러 나선다. 애당초 비난이 아니었고 공격으로 맞받지 않았음을 알기에 서로 풀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권위를 등에 업은 주장들일수록 검증해라. 상식을 비틀고 의심하고 반박해서 너만의 가치를 다져라.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너의 주장만큼이나 상대방의 주장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내가 철학과에서 배운 건 이러한 일련의 ‘태도’들이었다.

‘만일 그 (나침반의)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영복,〈떨리는 지남철〉중

대단한 지식도 아니고 겨우 그까짓 태도를 4년동안 배운거면 아깝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주 당차게 ‘아니다’라고는 못하겠다. 인정한다. 철학과에서 배운 이 태도가 돈이 되고 일자리가 됐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태도는, 별의별 멘토와 조언이 창궐하는 오늘날 나를 지키는 방파제가 돼 주었다. 그 어떤 권위자의 입에서 나온 조언이라도 비틀고 의심하고 반박함으로써 나의 내일을 가리키는 이정표로 가다듬을 수 있었다. 함부로 내뱉을 뻔한 편견의 말들을 한번 더 곱씹고 삼킴으로써 상처 입힐 뻔한 누군가들에게 그나마 덜 나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때의 내가 틀렸었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반성하길 멈추지 않으므로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게 됐다.

학교에선 뭘 배우냐는 질문에 당황해하던 어리바리 신입생은 서른을 코앞에 둔 늙다리 철학과 졸업생이 됐다. 철학에 관심이 많던(?) 그 미용실 원장님을 재회한다면 간신히지만, 이제 이렇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철학과에선 권위 있는 상대의 말을, 당연했던 나의 상식을 의심하고 반성하는 법을 배운다고. 그럼으로서 좀 더 나은 삶, 괜찮은 인간에 반걸음이나마 다가설 수 있는 태도를 배운다고 말이다.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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