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일상생활

[논객칼럼=신세미]

코로나 19가 세계를 온통 흔들면서 달라진 일상, 생소하고 편치 않은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요즘이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수시로 꼼꼼하게 손 씻기, 외출할 때면 마스크부터 챙기기가 너와 나를 위한 최우선의 생활예절이 됐다. 감염 예방 차원에서 ‘비대면의 거리 두기’를 위해 각종 모임을 안하고 못한 지도 지난 2월 중순이후 두 달이 넘었다. 근래 다소 느슨해진 느낌도 있지만 ‘비대면’, ‘집콕’이 강조되면서 한집 식구 이외엔 부모자식, 형제자매 간에도 왕래가 조심스럽고, 경조사 참석도 망설이게 됐다.

#손씻기: 휴대폰 카톡방에서 지인들과 안부를 나누다가 손 씻는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 사는 한 친구는 요즘 생일 축하 노래를 하루에도 수십 번 흥얼거린다고 했다. 손씻기와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노래라니? 내 궁금증에 대한 설명처럼 친구의 댓글이 이어졌다. 생일 축하 노래를 두 번 부르는 시간이면 비누 거품 내서 손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씻기에 충분하다, 코로나 19이후 수시로 손을 씻다보니 생일 축하 노래를 자주 부르게 된다고. 핸드폰 스톱워치를 작동하고 적당한 빠르기로 생일 노래를 한번 부르니 10초, 두 번이면 20초 정도의 시간이다.

손 씻는 시간을 친숙한 생일 노래로 어림하다니. 1부터 20까지 숫자 세기보다 ‘생일 노래 두 번 부르는 동안’이라는 시간 지침은 남녀노소가 덜 지루하게 시도해봄직한 팁으로 다가왔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 이후 감염병 예방 5대 국민행동 수칙의 하나로 ‘30초 이상 올바른 손씻기’가 강조되고, 영유아 대상의 손씻기 노래, 손씻기 예절을 일깨우는 영상 앱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일상에서 서로를 의식하며 일정한 간격 유지가 생활화하고 있다. 객석의 관객 및 무대 위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도 마스크 차림이었던 지난 3월 22일의 피아노 독주회.@신세미

#마스크: 객석의 관객 900여명 뿐 아니라 무대 위 피아니스트도 마스크 차림으로 연주한,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묘한 음악회. 지난 3월 22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의 피아노 독주회는 여러모로 특별했다.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 연기된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공연은 사실 연주자 관객 공연기획사 모두에게 모험이었다. 2013년 첫 내한 공연이후 꾸준히 한국 팬과 교감해온 그 피아니스트는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신뢰하고 한국인을 응원하는 의미”라며 독주회를 예정대로 강행했다. 서울 공연 후 귀국편 항공권 확보도 수월치 않고 타국으로 갈 수 없을뿐더러 러시아 모스크바로 돌아가도 2주간 자가 격리 조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날 막이 오르고 연주곡 중 베토벤 소나타 ‘템페스트’, ‘열정’에 이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대곡인 ‘햄머클라이버’가 막바지로 향할 무렵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피아니스트가 마스크 위로 빨개진 얼굴을 드러내며 연주를 중단한 채 무대를 벗어났다. 3분 여 만에 재등장한 피아니스트는 ‘햄머클라이버’ 4악장 대신 자신과 관객의 마음을 보듬듯 소나타 14번 ‘월광’ 전곡을 비롯해 쇼팽 리스트 곡까지 앙코르곡을 40분 넘게 연주했다. 공연기획사 오푸스에 따르면 “피아니스트가 ‘햄머클라이버’ 소나타에 몰입하던 중 문득 마스크 쓴 관객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홀로 계신 86세 어머니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울음이 터져 연주를 계속 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내한 공연과 유튜브 등을 통해 화려하고 열정적인 연주를 펼쳐 ‘건반 위의 검투사’로 불리는 피아니스트지만 코로나 상황도 안타깝고 답답한 데다 2시간을 훌쩍 넘긴 연주시간 내내 마스크 아래로 호흡이 힘들고 감정 조절이 힘들었을 것 같다.

@신세미

#거리두기: 외출 자제, ‘집콕’이라는 코로나 방역시대의 지침을 충실하게 따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봄나무의 눈부신 연두와 연분홍 희고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꽃... 가는 봄날이 아쉬워 몇몇이 뜻을 모아 봄나들이를 꾀했다. 밀폐 공간이 아닌 자연 속에서. 일행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한 공간에 같이 있되 접촉 정도를 최소화하는 나름의 묘책이 봄나물 캐기였다.

별난 봄나들이 아이디어를 낸 건 경기도 하남 미사지구 쪽으로 이사한 지인이었다. 그는 사전 답사를 통해 길 안내는 물론 봄나물 정보를 제공했다. 냉이는 이미 억세졌지만, 연한 잎을 드러내는 쑥이며, 찔레꽃 화살나무의 여린 잎이나 지천에 널려 있어 성가신 잡초로만 알았던 개망초도 이맘때 잎은 사서 먹는 봄나물 못지않단다. 우리 일행은 둑길에 흩어져 한 두 시간 손톱 밑이 시커멓게 될 정도로 풀을 땄다.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속 인물처럼 주변에서 제철의 싱싱한 식재료를 수확하다니, 어떤 양념으로 어떻게 맛을 내느냐 보다, 직접 봄나물을 채집하고 잠시 ‘코로나 블루’로부터 벗어난 모처럼의 야외 나들이가 즐거웠다. 언젠가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취미로 ‘봄이면 야산으로 나물 캐러간다’던 한 전문직 중년남성의 한마디가 문득 떠오르면서, 코로나 이후 이제 봄나물 캐기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따로 또 같이’ 즐기는 2020년 봄의 풍경으로 기억될 것 같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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