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작년 9월부터 시작된 한미 간 방위비 협상이 작년 말까지였던 협상종료 시한을 넘긴 채로 난항을 지속하고 있다. 그 중심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다. 그는 지난 달 한국 정부가 13% 인상안을 제시했으나 자신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13% 인상안은 양국 실무자 선에서는 합의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한국은 부자 나라로서, 부담금을 더 내야한다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더 내게 될 것”이라고 압박 수위를 한층 올렸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 안에서는 두 가지 목소리가 들린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13%는 한국으로선 가능한 최고의 인상안”이라는 발언과, 정경두 국방장관의 “13%인상이 확정된 정부안은 아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더 내기로 했다”는 트럼프의 발언에 “확정된 것은 없다”고 일단 부인했다.

방위비 문제가 이처럼 꼬이게 된 것은 금액을 놓고 미국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것이 원인이다. 1991년 이후 양국은 5년 단위로 분담금 협상을 해왔지만, 한국은 외교부 국방부 재경부, 미국은 국무부 국방부 실무선에서 합의한 것을 양국 대통령이 추인하는 방식이었다.

픽사베이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동맹국들에게 방위비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할 것이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다섯 배나 인상한 50억 달러를 요구했다. 문제는 인상요구가 ‘한국은 부자’라는 근거나 타당성이 애매한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500%를 더 받으려는 상대에게 13% 인상은 안 올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50%는 인상해야 10분의 1이라도 받았으니 나머지는 나중으로 넘긴다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13% 인상안을 수용할 경우 미국의 언론들은 트럼프의 계산법이 엉터리였음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공격할 것이다.

트럼프의 ‘13%거부’ 입장은 더 큰 돈이 걸린 나토 동맹국과 사우디, 일본 등 한국보다 부자인 나라들과의 분담금 협상에 미치게 될 부정적인 영향과 함께, ‘협상의 천재’라는 자신에 대한 평판이 훼손되는 것을 고려한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이미 11월 대선전선에 먹구름이 낀 트럼프 대통령이다. 코로나19 대처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한 가지 현안이라도 털고 갈 필요가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방위비협상 문제를 털고 갈 기회를 버린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한미분담금협상은 1991년부터 30년 가까이 지속돼 온 동맹 간의 거래다. 500% 인상은 조폭세계와 같은 비정상적인 관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거래이고, 법률적으로도 징벌적 배상에서나 가능한 거래다. 최소한 동맹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거래는 아니다.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부당한 요구를 할 이유가 없듯이, 미국도 한국에 그런 요구를 할 이유는 없다. 주한 미군의 운용에 들어가는 비용을 반반 수준에서 분담하기로 한 양국 간의 합의정신은 온당한 것이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모든 국가 간 거래에서 가격을 올리는 방법으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일 것이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특별한 비용증대 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 기준을 적용하면 된다. 그 기준을 적용한다면 지난 해 3% 안팎인 한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에 비추어 13% 인상도 과한 편이다.

남북 북미 간의 대화분위기 속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축소 또는 중단됐다. 이런 상태는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한 압박용으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쓸지 모른다는 억측들이 있다.

이 카드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한미 방위비 협상은 머지않아 인상보다 인하가 주요 의제가 된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폭적인 인상은 미국에는 유리하나, 한국에는 큰 부담이 된다.

현재의 분담금 협상에서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미국 측이 협상미타결을 이유로 주한미군 내 4,00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중단한 조치다. 한국이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지급체계의 모순을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따라서 한국이 임금이 아닌 생계지원금 형식으로 지급하기 위해 특별법까지 제정했지만 미국 측은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도 인도적 차원에서 미국 예산으로 먼저 지급한 뒤 협상타결 후 정산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무엇보다 미국이 대국다웠을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제시할 13%+α에 달려있다. 한국은 코로나19로 대규모 재정수요가 발생된 입장에서 13%이상 인상할 여지는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에도 인상률이 20%를 넘겨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 만약 미국이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한미동맹의 균열 부담을 각오하고 협상을 중단하는 것도 방법이다. 동맹의 가치를 정신이 아니라 돈으로 계산하는 미국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다. 만약 차기 대선에서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보다 합리적인 협상이 가능해 질 수 있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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