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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전 못하는 남자입니다[하정훈의 아재는 울고 싶다]
하정훈 | 승인 2020.05.13 08:29

[청년칼럼=하정훈]

나는 '고자'다. 운전 못하는 '고자'다.

'운전 못하는 남자면 남자지 고자일께 뭐냐'고 한다면 왠지 운전이라는 영역은 남성성을 대표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다. 어떤 남자가 매력적인 남자인가에 대해 TV프로그램에서 여자 패널들이 언급하는 걸 보면 운전 잘하는 남자, 후진 잘하는 남자, 주차 잘하는 남자, 자동차 뚜껑 여는 남자 등을 이야기한다.

나는 사실 운전면허증이 있다. 그러나 장롱면허다. 장롱에 모셔 놓은지 15년이 넘었다. 때는 2002년 월드컵 전 수능을 마친 어느 날. 아버지는 그닥 관심도 없던 운전면허증을 기어코 따야 한다고 하셨다. 그때만해도 스틱(수동변속) 차량으로 운전면허를 따야 하던 시절이었다. 하루에 2시간씩 몇주 동안 연수 부지런히 받고 필기시험도 100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면허증을 단번에 딴 난, 그야말로 운전기대주였다. 아버지한테 연습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면허증을 따고 아버지 따라 운전 연습을 했다. 역시나 운전은 가족한테 배우면 안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아버지는 내가 운전하는데 옆에서 발을 직접 넣어 브레이크를 밟으려고 하고, 옆에서 " 조심해야! 아야! 아야!! "하며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그리고 정말 싫었던 건 아버지가 자꾸 나를 언덕배기로 데려가는 거였다. 그리곤 올라가라는 건데, 경사 각도가 거의 70도 이상 되는 곳이었다. 지금처럼 오토(자동변속) 차량은 그냥 밟으면 올라가지만 스틱 차량은 브레이크와 기어, 액셀(가속기)을 엄청 잘 조절해야 했다. 아무튼 거기서 올라가는 데 실패하면 경사로에서 뒤로 차가 물러나거나, 시동이 꺼지거나 그랬는데, 그런 순간이 오면 아버지의 한숨은 '팍팍', 갈굼은 계속돼 자존감이 흔들거렸다.

픽사베이

운전에 대한 흥미, 재미, 의미를 다 잃어버린 게 그때였다. 결국 마지막 주차코스는 아예 아버지한테 학을 뗀뒤 배우지도 않았고 난 대학 간다고 서울로 '도망'쳤다. 그 이후론 운전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전혀 관심이 없다.

서울로 올라와 생활해보니 교통이 너무 잘 돼있다. 차를 몰 일이 아예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운전실력은 점점 퇴화돼갔다.서울지리를 잘 몰라 5년 넘게 지하철로만 다녔다. 그래도 잘먹고 잘살았다. 운전에 대한 필요를 못느끼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운전에 대한 필요성을 조금씩 느끼게 됐다. 연애 시절 남녀가 데이트 하다보면 보통 남자가 차 가져오고 여자는 조수석에서 발 올리고 창밖 바라보는 그런 풍경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난 아내 처음 만났을 때조차 고시원을 못벗어난 남자였다. 차는 무슨, 그냥 어디 역에서 만나~하면 우리 둘은 서울 곳곳의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그래도 부지런히 곳곳에서 서울데이트를 했다.

서울은 참 볼 게 많다. 당시 아내 베프 친구의 남자친구들은 차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 함께 놀러가면 우리 둘은 부지런히 뒷자리에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재밌게 하려고 노력했다. 아니면 휴게소 가서 얼른 친구들 간식거리를 사오거나 했다. 괜히 미안하니까 그랬다. '쪽 팔려서' 그랬던 점도 있었던 것같다. 장인어른, 장모님 처음 뵈었을 때도 좀 창피했다. 30대 중반 넘어서 운전도 못하는 사위, 좀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관대하게 ‘나중에 아기 생기면 차사고 운전도 잘해잉~’ 장모님이 그러셨다. 그런데 난 애 가질 생각도 없고, 차는 아직 진짜 잘 모르겠다. 난 불효 사위인걸까?

나는 왜 운전을 안하려 할까?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운전에  딱히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이런 이야기하면 아내한테 욕 또 먹겠네~) 운전을 하기 보다는 차에 타 바깥풍경 보는 걸 더 좋아하고, 운전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굳이 돈 들여가며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삶의 것들이 내겐 더 재밌는 게 많아서 그쪽으로 더 내 삶을 투자하고 싶다. 운전 안해서 좋은 부분도 있다. 아니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일단 음주운전, 그런 걱정 전혀 없다. 남자들 객기부린다고, 술버릇에 그저 괜찮다고 음주운전 하는 사람들 많다. 엊그저께도 모 연예인이 음주 운전하다 연예인 인생 날아갔다.

그리고 또 차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 잘은 모르지만 꽤, 솔찬히 들어갈 것이다. 그 돈이면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더 먹을 수 있다. 부부끼리 솔직히 성공한 사업가 아니면 한푼이라도 아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자산형성에 도움이 된다. 차 안 몰면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내 친구 이영재는 영업을 하는 친구이다. 전국을 다니며  영업하는데 차에 있는 시간이 무척 많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나면 그놈 배가 점점 불러온다. 만삭이다. 돼지가 돼버렸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지 않나? 운전만 하니 배가 불러오는 것이다. 부지런히 대중교통 이용하고 도리어 걸을 수 있을 때 걸으면 건강에도 좋고, 운동도 적당히 되니, 얼마나 좋은가? 건강하신 송해 선생님도 대중교통, 지하철 타고 다닌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 백날 해봐야 우리 아내한테 욕만 먹겠지~) 그러나 욕 먹어도 운전에 대한 욕망이 안 생기는 게 참 희한하다. 나 같은 사람들도 분명 많다고 생각한다. 걷는 걸 좋아하고, 운전하는 마초적인 남성적인 모습은 못 보이더라도 섬세하고 감성 충만한 낭만 아재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 다 모이는 동호회 같은 거 어디 없을라나? 운전 못하는, 아니 안하는 낭만 아재들의 세상. 그전에 우리의 세상을 성취하려면 자율주행자동차가 빨리 도입돼야 할텐데...빨리 와라 4차산업혁명아!

 하정훈

 그냥 아재는 거부합니다.

 낭만을 떠올리는 아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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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훈  screenboy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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