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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곽예지의 생각으로 바라보기]
곽예지 | 승인 2020.05.14 09:15

[청년칼럼=곽예지]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글들을 여러 편 쓰게 된다. 내 또래의 대학생들 중 자발적으로 글을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끔 마음 가는대로 적는 일기 몇 편과 더 가끔 쓰게 되는 편지 몇 통을 빼고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책상 앞에 앉아 연필을 쥐게 하는 글은 대부분 ‘써야 해서’ 쓰는 것들로 구겨지듯 남는다. 나도 다르지 않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의 모습이라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내향적으로 파고드는 일기나 때때로 자폐적인 글들을 남들에게 안보이게 블로그에 끄적이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가끔씩 정신을 차려 이렇게 논객닷컴에 칼럼도 기고하고, 나에게 주어지는 과제를 작품쓰는 것이라 생각하며 몰입해서 쓰기도 하고, 글을 짓는 공모전에 참여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내가 쓴 글들이 얇디얇은 종이 위에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이 새로운 사람과 인사하는 것보다는 더 편해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도 글을 쓸 때마다 한 차례씩 겪는 레퍼토리가 생긴 것 같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도자기를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아직 나의 글쓰기는 물레로 스르르 만들어내는 잘 빠진 도자기라기 보다는, 두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만지고 굳히는 작업 쪽에 가깝다.

픽사베이

가장 먼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모아와 던져놓는 흙덩이는... 못생겼다. 정말, 못생겼다. 내가 글을 쓸 때 꼭 마주해야 하는 흙덩이이기도 하다. 주제와는 겨우 비슷한 소재의 찌끄러기부터 전혀 관련도 없는 산으로 가버린 끼적임까지, 분명 내 손에서 나온 거지만 더럽게(?) 못썼다.

결국 흙덩이 앞에서 쭈글쭈글한 반팔 티의 소매를 몇 번 걷어 올리고, 어깨처럼 축 처진 바지도 끌어 올리곤 그 앞에 각을 잡고 주저앉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과연 이런 걸 만들어내도 되는 걸까. 이런 것을 가지고 ‘썼다’고 표현하면 그건 나의 수치, 세상의 수치가 아닐까...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생각만 반복하며 한숨 쉬는 시간으로 흘러 흘러 보내는 경우도 아주 많다. 그러다가 아무리 봐도 못나 보여 흙덩이를 치우고 드러누워 버리는 경우도 잦다.

그러나, 가끔씩은 배에 힘을 주고 이렇게 내뱉는다. “뭐라는거야~?” 혹은, 사투리 섞어서 “아, 뭐라는겨?”. 그렇게 내 흙덩이의 하찮음을 시원스레 인정해 버린다. 남들이 알아채기 전에 내가 먼저. 그런데 스트레스가 조금씩 풀린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 같다. 이 말을 자꾸 자꾸 내뱉으면서 그냥, 글을 쓴다.

그 이후로는 수많은 주물럭의 향연이다. 주물럭 주물럭 말을 바꾸고, 문장을 뒤집고, 문단을 갈아엎기를 계속한다. 그 못생긴 흙덩이를 끊임없이 주물거리다 지치면 한숨을 한번 폭 쉬고, 뒤로 몇 걸음 걸어 나간 뒤에 실눈을 뜨고 형체를 갖춘 실루엣을 조심스레 한 번 쳐다봐준다. 뭔가 그럴듯해졌다. 결코 예쁘게는 빚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흙이 도자기가 되긴 된다. 조금 뿌듯하기도 하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몇 번을 둘러보고 쳐다본다. 겨우내 완성된 그 도자기의 형태가 지겹다고 느껴질 정도로 여기저기 들여다본다. 앞부분은 좀 매끈하게 빠진 것 같아서 흐뭇하기도 하고, 중간의 본론 부분은 여전히 한숨이 나오지만 더 건들면 무너질 것 같아 이쯤에서 그냥 내버려둔다.

이제 굳히기를 시작한다. 숙성을 시켜야 한다. 글도 숙성을 시켜야 더 좋다. 가끔 믿을만한 사람한테 내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부끄러워서 평가받기도 힘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은 숙성을 시키고, 내가 며칠 후에 다른 사람이 보러 온 듯 새침한 척을 하면서 다시 들여다본다.

그 어찌 할 수 없을 것 같던 헛소리의 향연이 제법 늠름하고 단단해졌다. 탁자 위에 놓아 내보여도 될 것은 같다. 그렇게 탄생한 꽃병을 놓고, 꽃을 꽂아 넣는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노트북 앞에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가장 좋아하는 문구, ‘완성을 미루고만 있는 우리의 작품이 형편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예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은 그보다 더 형편없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적어도 남아는 있게 된다. 초라하지만 그래도 존재한다’를 삐뚤빼뚤 옮겨 적은 종이 띠가 붙어있다.

지금 이 칼럼을 쓰면서도 짙은 한숨을 두어 번 뱉고 페소아의 글을 몇 번을 쳐다보며 멍을 때렸다. 그리고 이제, 완성이다!

  곽예지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재학중. 소설 [파리증후군] 

독립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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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gyj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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