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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후반, 솎아내기의 계절[앤디의 프리라이팅]
앤디 | 승인 2020.05.15 09:45
[청년칼럼=앤디]

이십 대 후반, 취업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한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청년실업은 항상 문제였고, 졸업만 하고 붕 떠버린 나 역시 마냥 놀 수만은 없어 청년인턴이라는 이름의 임시직으로 6개월 정도 그 기관에 출퇴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가 매년 하는 행사로 추정되는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한 나절 동안 배를 재배하는 과수원에 가서 일손을 돕는 것이었는데 그때 내게 주어진 일은 배를 솎아내는 작업이었다.

배나무에 달린 어린 배@논객닷컴

 '솎아내기'란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밀파되거나 밀식된 식물체의 생육 환경을 양호하게 하기 위하여 사이사이의 식물체를 뽑아내어 식물체의 간격을 넓히는 일"이라고 나온다.

실제 과수원 주인 분이 더 잘 자랄 배를 위해서 나머지 것들은 솎아내는 거라는 설명을 해주셨고, 그때 나는 농가에서 쓰는 '솎아내기'라는 말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

목장갑을 끼고 가위를 쥔 다음 사다리를 올라타긴 했는데 (아직은 배라고 할 수 없는) 푸르뎅뎅한 아기 배들 중 무엇을 잘라내야 하는 것인지 그때의 나는 무척 난감했었다. 농사 무식자로서 뭘 모르기도 했지만, 내 눈에는 그저 다 잘 자랄 배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손을 도우러 간 것이었기에 최대한 설명에 귀 기울여 가며 조심조심 배를 솎아내긴 했지만 행여 미래의 멀쩡한 배를 잘라내는 건 아닐까 계속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인생에서의 솎아내기가 시급하고 절실한 요즘, 망설임 가득했던 나의 이십 대를 부쩍 자주 떠올린다.

그때는 내 삶의 모든 것에 '가능성'과 '잠재력'부터 대입했던 시기였고, 과수원의 아기 배들 뿐 아니라 내가 가진 전부가 무럭무럭 잘 자랄 것이라는 환상과 믿음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만약 지금 배 솎아내기 작업을 하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빠르고 단호하게 안 될 성싶은 배부터 싹둑싹둑 잘라 낼 것 같다)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 내 나이를 가만히 응시해 본다.

최종 결판까지는 아니어도, 중간점검 정도까지는 가능한 기분이 든다. 로또 당첨이나 천지개벽 등의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대충 내 삶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겠구나 하는 짐작도 점점 뚜렷해진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두렵고 불안해진다. 삼십 대 후반의 내 현실에서 풍기는 그 기미란 것이 마음에 썩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데 정답이 탁 떠오르지 않을 때는, 내게 놓인 선택지들 중 나와 맞지 않는 것부터 하나씩 지워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결국 삶에 대한 솎아내기다.

배 솎아내기가 생각 난 기념으로, 오늘 내게 놓인 선택지 중 한 가지를 싹둑 잘라보았다.바야흐로 솎아내기의 속도감과 단호함이 필요한 시절이 왔다.

    앤디

    글을 쓰는 순간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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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lion012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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