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내홍이 도를 넘고 있다.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쩌려고 저러나”하는 걱정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쾌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잘하고 있다고 보는 긍정적 시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놀랄 일이 별로 없고, 오히려 곪아 터지기만 기다리던 일이 벌어졌다고 여기는 쪽이다. 그렇게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명분을 내세우는 집단일수록 안으로 썩기 쉽고, 구성원 가운데 선량하지 않은 사람도 더 많이 끼어들게 마련이라는 평소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건전한 진보정당이 없이 한국 정치의 온전한 발전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따라서 그들이 깊은 자기 성찰과 과감한 과오 수정을 통해 거듭 태어나기를 진정 바란다.
    
우선 말해둘 것은 지난 총선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를 뽑기 위한 내부 경선에서 부정행위가 다수 저질러졌다는 것은 일부 타당한 항변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사실인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통합진보당 출범 당시 일부 계파가 정치판을 전전하면서 파탄과 분란을 일으키고 다닌 문제의 세력이라는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민주노동당에서 소수파였던 민중민주계열이 국민참여당의 진입과 함께 비당권파로 다수세력을 이루면서 2008년 분당사태를 확대 재연하고 있다는 정치적 해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광범한 선거 부정에 대한 반발로 비롯됐다는 점이 이를 단순한 계파싸움으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당권파는 조사위원회의 부당성을 공격하지만 조사위가 수사권을 가진 게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조사가 미진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선거 부정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이 세상에 100% 완전한 선거가 어디 있느냐”는 주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또 이 세상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이런 일은 대단히 나쁘다.
 
가령 표절행위가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불공정행위여서 나쁘다면, 선거 부정은 민주주의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반민주범죄여서 더욱 나쁘다. 언론의 자유와 공정한 선거는 민주정치의 전제인데, 똑같은 속임수라도 표절이 기와가 깨어져 지붕을 망가뜨리는 ‘와해(瓦解)’라면 선거부정은 흙이 무너져 집을 무너뜨리는 ‘토붕(土崩)’이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는 자유당과 민주당,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대통령선거와 반장선거를 가릴 것 없이 그것이 무엇이든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진보진영의 근원적 문제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건전한 회의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이후에 대학을 다닌 세대의 일부는 군사독재의 불의와 민주세력의 정당성을 확신한 나머지 지식인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명분집단에서 고달프게 살다가 국회의원 자리가 눈앞에 보이는 때일수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 옳은 말 하기는 쉬워도, 부귀와 영화 속에서 정도를 걷기는 어렵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말해 나는 관념론과 도덕적 불감증, 그리고 이중성이 우리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이 가장 빠지기 쉬운 세 가지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관념론적 경향은 이념 편중과 고정관념으로 흐르는 지름길이다. 예컨대 걸프전 때 미국이 밉다고 사담 후세인을 찬양하다가 이라크 현지에 가보고는 쿠르드족 학살에 새삼 분개하는 보도가 기억난다.
천성산 도롱뇽부터 제주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관념적 주장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도덕적 불감증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이르는데, 통합진보당 당권파도 이런 증상을 앓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미워하면서 닮아간다고 군사독재와 기득권 세력의 부도덕성을 배워가면서 자신들의 행위는 사회 변혁을 위한 것이니까 문제가 없다는 발상이다. 이중성은 좀 어려운 표현으로 ‘존재와 사고의 분리’인데,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민중의 언론’을 자처하는 일부 방송 기자들이 정권 초기에는 엎드려 있다가 말기가 되니까 느닷없이 파업을 벌이는 행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분단체제의 한 특성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절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60여 년 전 한국전쟁이후 오랫동안 정치적 좌익을 부정할 뿐 아니라 중도좌파를 ‘빨갱이’로 몰아 탄압해 왔다.
사실 우리가 민주국가인 이상 좌익사상이나 정치는 문제가 있을 수 없다. 다만 북한에 대해서는 분단의 현실과 그들의 폭력적 행태 때문에 일정한 한계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에 대한 화해 주장이나 온건론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당연하다.

모든 나라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기본적으로 정상분포를 보인다. 국민 가운데 극좌-좌파-중도좌파-중도-중도우파-우파-극우가 서양 종 모양의 커브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데, 단지 역사적·정치적 연유로 양당제와 다당제 등 정치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치가 국민의 다양한 욕구와 생각을 담아내려면 정당체제가 정치적 스펙트럼을 최대한 폭넓게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진보정당이 북한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정한 자제심과 신중성을 갖는다는 조건 위에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극히 온당한 일이다.
 
참고로, 나는 개인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투표한 일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건전하게 번성하는 것이 한국 정치가 발전하는 길이라는 데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정치는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고 종종 민감한 사안이 되고는 한다. 하지만 정치는 사회 전체의 제도와 운용을 규율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흥밋거리에 그치기에는 훨씬 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진보통합당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다른 단체와 조직, 직장과 학교에서 없으라는 법이 없다.
 
오히려 문제가 불거지지 않아 속으로 심하게 앓다가 가끔씩 크고 작은 일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경우가 잦을 뿐이다. 체육계와 각종 스포츠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가 내부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 체육인들 자신이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서로를 정치적이라고 비난한다. 통합진보당의 최근 곤경을 바라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 스스로 옷깃을 여밀 따름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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