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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시간과 문재인의 시간[이계홍의 세상읽기]
이계홍 | 승인 2020.05.22 08:50

[논객칼럼=이계홍]

오는 23일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이합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릴 노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은 코로나바이러스 19 확산 우려 때문에 예년과 달리 현장 추모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한다고 합니다. 대신 랜선 추도식으로 전환해 SNS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로 추모한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던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의 가치를 되새긴다고 합니다.

11주기 슬로건으로 내건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는 노무현 정신의 핵심 가치이자 철학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좌절되었습니다.

2009 5월 23일 토요일 오전, 필자는 일행들과 함께 서울 교외의 산을 등산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라디오를 켜놓고 산을 오르던 누군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 마을의 산에서 추락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당시 노 대통령은 퇴임한 후에도 집요하게 검찰과 언론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막연한 불안감이 들면서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대개 이런 예감은 불행히도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후 되어서는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것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처지는 아니지만, 노 대통령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졌던 사람이었습니다. 접근하기 어려운 권위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동네 가게 아저씨처럼 쉽게 접근해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사람이었습니다. 쉬운 시중 언어, 눈물을 뛰어넘는 소박한 웃음, 인간적인 이마의 일자 주름살, 형식을 따지지 않는 수더분한 면모는 바로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장난기 있는 한 시민이었습니다.

강고한 수구 기득권의 야유와 조롱

그런 노무현 대통령을 보수언론이 주축이 되어 할퀴고 헐뜯었습니다. 자료와 통계와 수치와 상관없이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외교 파탄의 책임자로 몰았고, 따라서 “촌놈이 어디 와서?” 라는 식으로 공격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것도 노무현 탓이고, 숭늉을 먹고 체해도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습니다. 서있으면 서있다고 때리고, 걸어가면 걸어간다고 비난하고 비웃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벌 엘리트주의에 젖어있는 지배층이 상고 출신이라는 가방끈을 가지고 조롱하고, 서민적 편한 언어를 대통령 격에 어울리지 않게 품격없이 구사한다고 야유했습니다. 대통령답지 못하다는 인격 모독과 색깔론, 근거없는 모략으로 집권 초기부터 몰아붙였습니다. 종전의 대통령 문법에 젖어있는 세력들은 시민언어, 서민언어로 소통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억울했을 것입니다. 강고한 수구 카르텔과 함께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온갖 탐욕과 이익을 취해온 기득권이 무차별적으로 몰아붙이니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부당하게 당하면 분노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비바람을 몸으로 그대로 맞으며 굳굳하게 앞으로 나갔습니다.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탈차별, 탈억압, 탈지배, 그런 가운데 부당한 특권을 누린 적폐들을 개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소권을 독점하며 횡포를 부렸던 검찰개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종합 브리핑룸 설치와 함께, 부당한 언론과의 거래 등 낡은 언론 관행을 뜯어고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먹혀버렸습니다. 더욱 비참하게 밟혔습니다. 그리고 미완의 과제를 남기고 노무현은 퇴장했습니다. 그의 퇴장과 함께 더욱 거친 역사의 반동이 일어나 이명박근혜 9년 세월 동안 정치권력, 검찰권력, 언론권력이 서로 눈감아주며 나라를 분탕질했습니다.

사진 청와대 홈피 캡쳐

깨어난 국민지성

그러나 깨어있는 국민 지성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촛불을 들어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노무현이 국정의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려 했던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이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으로 하나하나 새롭게 손질되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이루려 했던 구질서 청산, 실질적 민주주의, 국민의 주권의식과 평화 정착 등 시대가 요구하는 담론들이 하나씩 지표면상으로 떠올라 해결의 단초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진화의 속도는 느릴지라도 세상이 확연히 바뀌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저항과 방해는 여전합니다. 기득권의 철벽이 강고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구질서가 노무현을 괴롭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문재인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혁파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을 지나면서 국민 지성이 큰 지원세력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모독했던 역사 반동의 이명박근혜 정권 9년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국민이 스크럼을 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성찰적 국민과 대안 매체의 등장으로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구세력을 제어해나가고 있습니다.

연대와 공감능력 확대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이후의 지구환경 변화와 방역 대책, 그에 따른 인간과 자연·생태의 공존을 실천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생활경제 회복, 동북아균형자론, 평화체제 정착, 지역균형발전을 앞당기는 문제도 앞에 놓여있습니다.

다행히도 코로나 19 이후 세계는 우리나라를 새로운 선진국가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럽 중심의 문명국가, 미국 중심의 군사강국이 아니라 국민의 높은 도덕지수와 민주의식, 그리고 위기를 정의롭게 해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고 우리를 새로운 선진 강국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완의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낡은 구질서의 옷을 과감히 벗어야 할 당위 앞에 놓여있습니다.

다행히도 그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국회 의석을 180석이나 점유해 그동안 짓눌러왔던 개혁과제, 그중에서도 검찰권력과 언론권력을 청산할 좋은 기회를 맞았습니다. 구질서 청산의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낚아채는 것은 집권세력이 가져야 할 도덕적 책무입니다. 오늘날 시대적 과제인 정치제도의 획기적 변화와 구질서 청산은 노무현 정신을 완성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과거 추억 속에 남겨두지 말고, 노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꿈을 실현하는 데 함께 진군하는 것이 노무현 11주기 추모의 진정한 뜻일 것입니다. 국민적 연대와 협력과 공감으로 완성해나가야 합니다.

   이계홍

   현 세종포스트 주필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이계홍  khlee0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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