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겁니다...”

중견가수 노사연씨의 ‘바램’이라는 노랫말 일부입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곱씹을수록 꽤 괜찮은 표현으로 다가옵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지만 늙는다는 표현이 주는 비감함보다는 달관의 경지랄까 익어간다는, 푸근한 표현이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기 편합니다.

‘밥이 익다’ ‘사과가 익었다’ ‘술이 익다’처럼 ‘익다’는 딱 먹기 좋을 때를 이릅니다. 인생도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 참맛을 알기 시작할 때가 나이들어갈 때라고 하지요 . 그러니 이 때를 곡식이나 과일의 성숙에 비유해 ‘익어간다’고 불러봄직합니다. 과일은 익을수록 향도 진해지죠.

‘익다’에 대(對)되는 말로 덜익다, 설익다(설었다)가 있습니다. 반대로 한단계 더 익으면 ‘무르익다’ ‘농익다’로 갑니다. ‘익다’는 ‘익숙하다’와도 의미가 상통합니다. 반대말로는 ‘낯설다’ ‘눈설다’이니 ‘설다’와 ‘익다’ 역시 대(對)되는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익다’란 표현은 매우 다양하게 쓰입니다.

-열매나 씨가 여물다=배가 익다/고기나 채소, 곡식 따위의 날것이 뜨거운 열을 받아 그 성질과 맛이 달라지다=고기가 푹 익다 /김치, 술, 장 따위가 맛이 들다=간장이 익다 /불이나 볕을 오래 쬐거나 뜨거운 물에 담가서 살갗이 빨갛게 되다=벌거벗고 땡볕에 돌아다녔더니 살이 익었다/썩히려고 하는 것이 잘 썩다=거름이 익다/사물이나 시기 따위가 충분히 마련되거나 알맞게 되다=혼담이 익어 가고 있다...등등 다양하게 의미확장이 돼왔습니다.

소 여물통@동이

음식 숙성이 잘됐을 땐 ‘삭았다’고도 했습니다.삭힌 홍어 등등으로 쓰이죠. ‘삭다’보다 ‘더 삭은’ 상태는 ‘곰삭다’라 했습니다. ‘곰삭은 새우젓’ 등  ‘곰삭다’는 오래동안 숙성시켜서 아주 잘 삭은 상태를 이릅니다.

숙성단계별로 조상들은 다양하게 말을 만들어 썼습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익다>삭다>곰삭다'는 성년이나 노인쯤 되는 것이요, ‘설익다’‘ 덜익다’는 애나 젊은이라 하겠습니다.

사람뿐아니라 사물 등에도 덜익었다는 뜻으로 ‘애’를 붙여썼습니다. 애오이(아직 덜익은 푸른 오이) 애호박 애저녁(초저녁) 등등이 그것이죠. 애저녁은 저녁에 되기에 이른 시간으로 지금은 ‘애초’ ‘진즉에’란 뜻으로 쓰이지만 초기엔 저녁보다 이른, 저녁노을이 서산에 떨어질 즈음(때)을 지칭했습니다.

‘여물다’ ‘영글다’ 역시 ‘익다’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야물다 야무지다 역시 계열어입니다. 여물다(열다+물다)의 ‘물다’는 (입을)다물다와 같죠. 벌어진 상처가 꽉 다문 상태를 뜻하는 ‘아물다’ 역시 ‘여물다’에서 가지쳤다고 봅니다.

열매는 ‘열다’에서 왔고 여물(소여물) 역시 여기서 비롯된 명사로 추정됩니다. 소에게 주는 먹이를 여물이라 했는데, 쇠죽을 쑤면서 콩같은 열매를 섞었기에 여물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콩따위를 섞지 않고 풀만 줄 때는 여물이라 안하고 ‘꼴’이라고 했습니다.

열다는?

꽃이 활짝 열리고(피고) 나서 열매가 열리듯 개화와 결실의 의미가 다 녺아있습니다. 야물다, 야무지다, 오무러들다, 오므리다 등등의 단어도 여기에서 분화됐다고 봅니다.

한편 ‘늙다’는 ‘낡다’로도 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세월의 흐름으로 나타나는 표현이지만 ‘낡다’는 사용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이미지인 반면 ‘익다’는 세월과 관계없이 용처가능한 이미지로 한결 품위있게 다가옵니다.

지긋한 나이! 늙어가는 게 아니라 곱게 익어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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