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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라는 말조차 헷갈리게 쓰는 나라[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김선구 | 승인 2020.05.25 09:01

[논객칼럼=김선구]

지난 4월 29일 이천 물류창고 건설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0년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에 이어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와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산업화 초기에 여러가지 여건이 미비했기 때문이라 자위하며 경제가 발전하면 이런 후진적인 안전사고가 사라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등 대형사고들이 이어지며 사고공화국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등장했다.

이런 사회분위기를 혁신시킨다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행정안전부란 부처 명까지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안전을 우선한다 했지만 이후 세월호 침몰이란 사고와 사고수습 미숙으로 임기전 정권이 침몰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며 안전을 지켜준다 했지만 집권 이후 제천 스포츠센터화재, 밀양 요양병원화재, 종로고시원 화재와 대구목욕탕 화재가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소방청 통계정보에 의하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화재발생건수와 사망자수에서 줄어드는 추세가 보이지 않는다. 건수로는 2013년 4만 293건에서 2018년 4만 2338건으로 사망자는 2011년 1861명에서 2018년 2594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특히 부주의로 인한 화재발생이 전체의 반에 가깝다.

화재에 비해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2010년-2013년 1100 명대에서 2014년-2018년 900 명대로 개선추세를 보인다.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에서 보이는 현상은 하드웨어적인 변화는 비교적 용이한데 비해 소프트웨어적인 개선이 어렵다는 점이다.

안전진단을 받고 철거 중인 재개발현장@ 논객닷컴

성수대교 붕괴후 교량보강공사를 하고 대구지하철사고를 계기로 지하철 의자를 불연성 재질로 바꾼 게 하나의 예이다.

안전 불감증이 큰 이유는 안전을 경시하는 문화가 만연해있는 탓이다. 하나의 예로 정부나 민간이나 안전이란 단어 조차 헷갈려서 쓴다.

서울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에 붙어있는 현수막은 안전이란 단어를 조롱한다.

재건축 첫 단계나 다름없는 안전진단 문턱을 넘으면 “축 안전진단 통과”란 현수막이 걸린다. 달리 말해 안전진단에서 안전 위험이 크다는 판정인 최하등급을 받는 걸 안전진단 통과라 한다.

최근 안전진단 종합평가 가중치에서 그 동안 20%에 불과했던 구조 안정성 비중을 50%로 올리고 대신 주거환경 비중을 40%에서 15%로 낮추며 안전진단에서 재건축이 가능한 최하등급 받기가 어려워져 재건축 추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재건축 여부를 결정하는 첫 관문인 안전진단에서 이름만 안전진단이지, 실제로는 주거환경을 위주로 평가해왔다.

안전이 위주가 아닌 평가를 안전진단이라 부르다보니 안전진단에서 불합격 받기를 바라는 역설을 만들어 왔다.

법치국가에서는 법이나 규정을 지키는 사람은 대우해주고 위반하는 사람은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 노조가 투쟁할 때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하지 않으면 처벌되는 게 정상이다.

'준법은 선이고 탈법은 악이다'가 법치에서 핵심가치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그 동안 끊이지 않고 있어왔다.

철도나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 노조에서 가끔 벌이는 투쟁 방식으로 준법투쟁이 있다.

2019년 10월에도 임금 피크제 폐지를 요구하며 준법투쟁에 돌입하기도 했다.

안전운행 지침상 역마다 30초씩 정차하게 돼있는데 준법투쟁은 이런 안전운행 규정을 원칙대로 지키겠다는 게 투쟁이 되는 나라다.

승객이 많고 적음에 따라 15-20초 정도 탄력적으로 정차하던 평소운행이 안전을 해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안전운행규정이다.

안전에 꼭 필요한 규정이라면 평시에도 지키도록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규정을 현실적으로 고쳐야하는데 안전운행규정이 현실과 다르게 만들어져 안전이란 단어가 희롱당하는 느낌이다.

안전수준이 향상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갈 길이 멀다. 요즈음 대형건물마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대책의 하나로 발열체크 카메라가 로비에 설치돼 있지만 설치만 하고 관리가 없는 건물도 많이 보인다. 발열체크가 감염확산을 막는데 효과가 있다면 제대로 해야지, 하는 흉내만 내서는 헛수고다.하드웨어적인 준비도 필요하지만 안전의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지않는 한 영혼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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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구  sunkoo2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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