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경쟁보다 협력 필요성 커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지난 13일 만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출처=더팩트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우] 손자병법을 보면 오월동주(吳越同舟)란 고사성어가 나옵니다. 원수 사이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뜻이죠. 적대 관계라도 이해가 맞으면 뭉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요즘 재계, 금융계에서 오월동주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으르렁댔던 기업들이 손을 맞잡으니까요.

재계부터 살펴보죠. 지난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사업장을 둘러본 후 점심을 함께하며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사업 공조를 위한 삼성과 현대의 총수 회동.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시절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과 현대는 특히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며 “심지어 신문 기사에서 누가 앞에 거론되는가를 두고도 신경전이 치열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과거를 뒤로한 채 동반자 관계임을 대내외에 공표했습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오른쪽)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하나금융

지난 25일엔 금융계가 시끌벅적했습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해외 사업에서 힘을 합치자는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MOU)을 체결해서죠.

국내 금융시장을 두고 피 터지게 다투는 신한 KB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은 협조가 불가능한 사이로 여겨졌습니다. 지나친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예전부터 나왔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죠. 그런 상황에서 4대 금융그룹 가운데 두 그룹이 동맹을 맺은 겁니다.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수석부회장, 조용병 회장, 김정태 회장은 왜 맞수와 제휴했을까요. 개인적 친분이 작용하긴 했을 겁니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선대와는 달리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용병 회장과 김정태 회장은 말할 것도 없죠. 1988년 신한은행 영등포지점에서 시작된 두 회장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수장 간 친교는 오월동주를 이뤄내는 한 계기였을 뿐 핵심 사유는 아닙니다. 오월동주가 성사된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가 불러올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보입니다. 미래 먹거리(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를 같이 발굴하든, 신규 시장(해외 사업)을 공동으로 개척하든 서로 도와야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삼성전자와 현대차,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의 합작이 잘 될 거라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언제든 견해차가 드러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분명한 건 재계와 금융계를 이끄는 선두 주자들이 동행이라는 전례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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