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미국 서부의 워싱턴 주에서 5월부터 사람의 시신으로 퇴비를 만드는 퇴비장(堆肥葬) 사업이 시행됐다. 주 의회가 지난해 시신의 천연유기환원과 가수분해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안을 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시신 퇴비화는 시신을 톱밥이나 목초와 함께 금속용기 안에 넣어, 약 30일간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재구성’ 과정을 거쳐 정원 화단이나 텃밭에 쓰이는 거름으로 만드는 것이다. 치아와 뼈 등을 포함한 모든 육체는 퇴비로 된다. 퇴비장의 장점은 장례비가 적게 들고, 친환경적이며 대도시의 묘지난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해로운 미생물 등 병원체도 분해가 가능해 질병으로 죽은 사람도 퇴비장이 가능하나 전염성이 높은 괴질의 일종인 에볼라 바이러스나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광우병) 등으로 사망한 사람 등 병원체 분해여부가 입증되지 않은 환자들은 퇴비장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이 사업의 시행사인 리컴포즈(Recompose) 관계자는 “관과 묘지가 필요하지 않고 화학물질이 생성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장례 방법”이라며 “매장과 화장으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이 온전히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했다.

미국의 퇴비장 얘기는 나의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40년 전 고 이기백 서강대 국사학과 교수가 들려준 그의 부친 ‘밝맑’ 이찬갑의 유언에 관한 것이다. 밝맑은 충남 홍성군에 있는 풀무학원의 창설자로서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불린 교육자였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풀무학원의 교정 한 켠에 입장(立葬)하고 묘 위에 나무를 심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시신을 눕히지 않고 나무가 위로 자라듯 세워서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 그 나무의 거름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형식은 매장이었으나 정신은 퇴비장이었으므로 밝맑이야말로 이 분야의 선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밝맑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오랜 병고 끝에 사망함으로써 입장의 유언은 실현되지 못했다.

모든 생명체는 죽으면 우주 속의 원소로 돌아간다. 그것의 다른 표현이 한 줌의 흙, 또는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이다. 매장은 땅에 묻어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고, 화장은 태워서 공기 중으로 원소를 날려 보내고, 타지 않은 부분은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픽사베이

퇴비장은 육신의 모든 원소를 인공적으로 가공해서 식물을 위한 퇴비가 되는 것이므로, 온전한 영양소로의 환원인 셈이다. 이에 비추어 화장 후 골분을 나무 밑에 묻거나 뿌리는 수목장은 절반의 퇴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매장의 경우도 시신을 담은 관이 목관이냐, 석관이냐, 방부처리를 하느냐 등에 따라 자연 환원의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 땅속의 육신이 부식하면서 생성되는 원소들은 식물이나 미생물들의 영양소가 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퇴비장이다.

사람은 살아서 장수를 원하고, 죽은 후에도 영생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부활신앙이고, 불교의 윤회설이다. 퇴비장은 얼핏 비윤리적이고 비종교적인 장례의식인 것처럼 인식되지만 새로운 생명을 생육케 하는 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종교성을 지닌다고 볼 수도 있다.

서양의 매장 풍습은 예수의 재림 때 부활하고자 하는 기독교 부활신앙의 영향이었다. 동양에선 ‘부모로부터 받은 몸은 훼손해선 안 된다(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는 효의 정신에서 육신의 훼손으로 간주되는 화장 대신 매장을 선호하게 됐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제는 매장보다 화장이 선호되고 있다. 매장으로 인한 묘지난과 핵가족화에 따른 묘지관리의 어려움, 자연훼손, 비용 등의 문제 때문이다. 유골의 형태라도 있어야 부활한다는 부활신앙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화장이 육신의 훼손이 아니라 자연환원의 방법 중 하나라는 효의 인식에 대한 변화에서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화장을 해도 재를 묻으려면 묘지 또는 납골묘가 필요하게 된다. 재를 생태계에 뿌리는 행위는 환경훼손에 속한다. 화장한 골분을 막바로 식물에 뿌리는 것은 식물의 생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매장과 화장에 따르는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시작된 퇴비장이지만 미국에서도 기독교계의 반발은 거세다. 리컴퍼스 사는 퇴비장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하기 위해 생전에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진 거름으로 키울 식물을 지정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거름을 선물하는 캠페인을 곁들이고 있다. 퇴비장은 아직은 우리사회에선 논외의 수준이지만 ‘영양가 있게’ 생을 마감하는 방법으로 논의를 시작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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