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어록1-탄신 250주년 특별기획



“법이 있어도 시행하지 않으면 법이 없는 것과 같다.”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 제1편 가운데 추관 형조(秋官 刑曹)편에 나온 말이다. 조선의 <경국대전> 형조편에 있는 ‘원악향리’(元惡鄕吏) 조목에는 타락한 향리를 처벌하게 돼 있지만 실행이 잘 안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조목에는 타락한 향리의 여러 유형이 열거돼 있다. 수령을 농락하여 권력을 쥐고 민폐를 꾸미는 자, 은밀하게 뇌물을 받고 부역을 고르게 지우지 않는 자, 세금을 마구 거두고 함부로 쓰는 자, 양민을 불법으로 차지해서 숨겨놓고 부리는 자, 백성을 부려서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자, 마을에 제멋대로 다니면서 백성을 침탈하고 사리사욕을 도모한 자, 세도가에 달라붙어 향리의 역할을 회피한 자, 관아의 위세를 빌려 백성을 침해한 자 등등.

 이런 향리를 백성이 고발하면 사헌부에서 조사해 처벌하게 돼 있었다. 고을 수령이 이런 짓을 저지른 향리를 조사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처벌받는다.

 다산이 보기에 이 법 자체는 잘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내버려두고 시행하지 않는 현실에 다산은 개탄해 마지 않았다.

 다산은 오랫동안 향리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며 이들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백성을 해치는 것이 한도가 없다고 당시 상황을 진단했다. 당시 향리들의 폐해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다산은 나라의 앞날에 대해 매우 암울한 전망을 갖고 있었다.

  진실로 지금이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다쳐올 재앙은 반드시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나라가 좀 먹고 백성이 다 죽은 다음이라야 그칠 것이다.
    -<경세유표> 제1편

따라서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향리를 단속하기 위한 관청으로 ‘장서원’(掌胥院)을 별도로 세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래야만 “그 불꽃을 없애고, 그 흘러가는 물살을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고 다산은 지적했다.

 요즘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공직비리수사처를 따로 설치하자는 논의가 다시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검찰의 반대로 무산됐다가, 이명박 정부 말기가 되니 다시 제기되는 것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누리당 사람들도 이런 주장을 편다. 공직자 비리가 이명박 정부 들어 전혀 줄어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최측근 인사들까지 줄줄이 연루돼 사법처리되는 ‘비극’을 똑똑히 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의 기소독점으로 인한 횡포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나온 반작용이라고 여겨진다.

 다산이 제안한 장서원과 요즘 논의되고 있는 공직비리수사처가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 원리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비처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법이 있어도 시행되지 않으면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다산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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