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뜻한 생각]

[청년칼럼=김연수]

@김연수

태어나서 한 번도 무언가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마치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사람처럼 할머니 손에서는 무럭무럭 자라던 화분을 학교에 가져가기만 하면 열흘을 채 못 넘기고 죽여 버리곤 했다. 무언가에 꾸준히 애정을 쏟고 들여다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었다. 그저 혼자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노는 게 훨씬 재밌었다. 어린 시절, 그 흔한 강아지가 키우고 싶다는 투정 한 번 부린 적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귀여운 동물이라도 키우기 위해서는 책임감과 성실함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나는 ‘나’ 하나 키우기도 벅찼다.

그래서인지 남동생이 유튜브로 ‘고양이 집사 브이로그’ 영상을 즐겨 보는 게 낯설기만 했다. 매년 생일선물로 고양이를 갖고 싶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꿈이 실현되고 말았다. 비염 환자가 자그마치 3명인 우리 집에 아기 고양이가 오게 된 것이다. 고양이는 요물이라고 했던가. 한 일주일만 키워보자고 일을 벌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 집에 한 달 넘게 눌러살고 있다. 예민하고 겁이 많으며 게으른 고양이는 코로나 19로 삭막한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사람 말고는 움직이는 생물에 무감각하던 나는 매일 아침과 저녁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넨다. 잘 잤는지, 좋은 꿈을 꿨는지, 아침은 먹었는지 애인에게 보다 더 살뜰하고 다정하게 묻는다. 평소 시니컬하기 그지없는 나를 알기에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양이가 오기 전,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기다리던 공채가 열리지 않아 취업 준비가 막막했고 고등학생이 된 동생은 날마다 무기력한 모습으로 EBS 영상 앞에 앉아 있곤 했다. 계속 집 안에 있어야 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계속 집에만 있고 싶은 커다란 이유가 생겨난 셈이다. 가족들은 일이 있어서 외출하면 집에 고양이가 잘 있는지 묻는다. 나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빨리 집에 가서 고양이랑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 또한 출근길에 그 흰색 털 뭉치가,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녀석이 문득 떠오른단다. 무언가를 키우는 건 생각보다 훨씬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김연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 지성사, 2009)

예전부터 좋아하던 송찬호 시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라는 시를 읽을 때면 일과에 지치고 소소한 일에 상심하며 힘겨워하는 나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기댈 곳 하나 없다고 느껴지는 늦은 저녁은 심한 불면증을 일으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같이 등을 맞대고 밤을 지새울 좋은 친구가 있으니 해가 지는 일이 두렵지 않다. 이 아이를 위한 모든 수고가 내게 안겨주는 행복에 비하면 아주 마땅하다고 느껴지는 나날이다. 부드럽고 따듯한 온기를 담아, 집에 있을 나의 친구, 나의 19호실, 우리 집 막내에게 감사를 전한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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