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중국 주유기 6

 


하늘은 맑기 까지는 아니지만 훤하다.
그렇지만 밖을 나서니 후덥지근한 날씨다.
백운산 서문에 도착하니 습기가 아래로 깔리고 땅의 음기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 하다.
 
난 백운산 서문에 날 좋아하는 귀신이 하나 사는 모양이다.
백운산 서문만 도착하면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다.
엥. 오늘 따라 노점상 한분도 없다.
 
교통통제하던 경찰이 노점상들도 모두 쫒아 버린 모양이다.
물도 사야하고 휴지도 사야하는 서민이 불편하다.
 
먼저 서문 입장해서
휴대폰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데
건장한 청년들이 들어 서면서 손을 흔든다.
어느 학교 학생들인가 봤더니 백운등산회 산우님들이시다.
 
오늘 따라 훈련대장님 산행 준비 운동을 강행하신다.
다리 찢기는 정말 유격훈련 수준이다.
합격 4 명, 불합격 3명
나는 다리 찢기 하다가 체력 방전될까봐 불합격에 줄 섰다.
불합격 하신 분들 모두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어머니 같으신 중국분
준비운동 감독하고 계신다.
모두들 의식하고 열심히 한다.
오늘 중국 어머니 날.
모두들 한국의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준비운동 열심히 했다.
 
준비운동 끝나고 출발하려는데....
빗줄기 뿌리기 시작한다.
모두들 우산 꺼내 쓰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준비운동까지 마쳤으니 산행은 당연히 출발하는 것으로 무언의 만장일치
 
출발한지 10분도 안되었다.
빗줄기 굵어 지더니 펴붓기 시작한다.
금방 길바닥에 물이 차고 등산화를 적신다.
우산이든 비옷이든 차이가 없다.
바람이 불고 빗줄기 굵어지니 황당해진다.
 
선두그룹도 황당하신 모양이다.
제자리 멈춰하면서 뒤돌아 본다.
이런 날 산행은 무리.
그렇다. 우리가 무슨 전문 산악인인가 ....
주말 건강하고 즐겁게 산행해 보자는 것인데
일기가 고르지 못하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지...
 
과연 하늘을 보니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산으로 떨어진다.
참 비 한번 화끈하게 온다.
옷이 흠뻑 젖었다.
건장한 청년들이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산행 마침표는 찍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들른 곳
백운산 산행 마무리 맥주 한잔 매점이다.
점심 시간 아직 안됐지만...
우선 막걸리 앞으로
맥주 앞으로
꼬마 김밥 앞으로
원조 김밥 앞으로
된장국 앞으로
호두 알맹이 앞으로
매점 파라솔 하나를 차지하고 먹거리 점호를 취하다 보니 비가 멎었다.

매점 앞 연못에서 낚시하는 할아버지
어부 출신이신 모양이다.
잠깐 사이에 두마리나 낚아 올린다.
강태공하고 친척되시는 모양이다.
낚이는 물고기 키기도 적지 않은데 모두 놓아주신다.
 
웃고 즐기며 떠들다가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도 아쉬우니 다시 코스를 바꿔서 산행을 계속하자는 것이다.
이미 젖어 버린 행장을 재정비 한다.
 
다시 산행길에 나서는 모습들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역시나
산행을 시작하면 비가 오고
산행을 그만하려 하면 비가 멎고
이 시간 이후 비는 나를 고아로 만들어 버렸다.
첫번째 비를 맞을 때는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두번째 큰 비를 만났을 때 나는 판쵸 돗자리를 생각해 내었다.
판쵸 돗자리를 꺼내 덮어 쓰니 우산 보다 훨씬 낫다.
아직 이런 머리가 돌아 가는걸 보니 치매는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난 집에 돌아와서 베낭에서 젖은 옷가지를 꺼내 놓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베낭 속에 우산이 있었던 것이다.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닐까 화들짝 놀라고 나니 정신이 화악들어 버렸다.
우산을 베낭 속에 넣고 하루 종일 판쵸 뒤집어 쓰고 비를 맞고 다녔다.
그 판쵸를 꺼내서 뒤집어 쓰다가 선두 그룹을 잃어 버렸다.
우산 꺼내 쓰면 간단한 것을 판쵸 꺼내서 뒤집어 쓴다고 고아가 된 것이다.
 
엄청난 비는 주머니의 겔럭시폰을 물로 적시고 말았다.
물에 젖은 겔럭시폰은 내것이 아니었다.
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 아이콘을 누르면 제멋대로다.
원하지 않는 전화가 걸리고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음악이 나오고
하늘님에게 잠시 빼앗겨 버린 폰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비 내리는 백운산의 사진이 하나 찍혀 있었다.
하늘님이 내 폰 가지고 장난하다가 한장 박아 놓으신 모양이다.
저기 검은 구름이 덥치면서
빗물을 뿌리는 곳은 마지링이다.
난 고아가 되어 빗물이 퍼 붓는 마지링을 멀리서 구경할 수 있었다.
마지링에 있는 일행에 전화를 때렸다.
뭐라구요 ?  뭐라구하셨지요 ?
모두 생쥐가 되어서 곧 하산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다행히 나도 생쥐가 되어 있어서 생쥐의 이야기를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모두들 수고 하셨습니다.
비가 있었서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 된 것 같습니다.
[출처] 광저우 5월13일 일요일 아침|작성자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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