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대책위, 윤종원 행장에 실망하면서도 대화의 끈 유지

기업은행 디스커버리 펀드 사기 피해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윤종원 행장과의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오피니언타임스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우] 윤종원 IBK기업은행장과 디스커버리자산운용 펀드(이하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 피해자들이 마주 앉았지만 해법은 안 나왔다. 양측은 100분간 견해차만 확인했다.

기업은행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디스커버리 US핀테크 글로벌 채권 펀드(이하 핀테크 펀드)와 디스커버리 US부동산 선순위 채권 펀드(이하 부동산 펀드)를 각각 3612억원, 3180억원 판매했다. 하지만 미국 운용사가 투자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환매가 미뤄졌다. 현재 핀테크 펀드는 695억원, 부동산 펀드는 219억원 환매 지연 상태다.

오피니언타임스은 지난 8일 오후 2시30분 윤종원 행장과 기업은행 디스커버리 펀드 사기 피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회동하는 서울 중구 을지로2가 IBK파이낸스타워를 찾았다.

간담회는 오후 3시부터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이미 1층엔 몇몇 기자들이 와 있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윤종원 행장과 대책위는 1층이 아닌 주차장을 통해 면담 장소인 27층으로 올라갔다. 간담회 참석자는 윤종원 행장, 김성태 기업은행 전무, 임찬희 기업은행 부행장, 최창석 대책위원장 등이다.

대책위 요구 사항은 4가지다. △모든 피해자에게 전액 보상 원칙으로 신속하게 선지급 △행장 주관 피해자 공청회 개최 △기업은행 이사회 참관과 발언 기회 보장 △디스커버리 펀드를 도입·판매한 기업은행 WM(Wealth Management·자산 관리)사업부 오 모 본부장과 김 모 팀장 징계 등이다.

간담회는 오후 3시10분경 시작됐다. 이의환 대책위 상황실장이 1층으로 내려와 기자들에게 상황을 전했다. 그는 “임찬희 부행장이 대책위의 의미를 축소했다”며 “(그는) 이번 간담회에 대해 협상이 아니라 피해자 얘기를 들어주는 거라고 했다”고 했다. 이견 조율의 어려움을 짐작케 하는 말이었다.

1시간 예정이었던 간담회는 100분이 지난 오후 4시50분경 종료됐다. 윤종원 행장은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지만 대책위 관계자들은 오후 5시5분경 2층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윤종원 행장이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했을 뿐 4가지 요구를 외면했다고 했다. 특히 대책위 관계자들은 윤종원 행장이 대책위와 기업은행 간 자율 조정보다 금감원의 분쟁 조정이나 개인 소송을 통해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대책위 관계자들은 기업은행이 금감원 조사 때문에 자체 조사를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기 위한 근거가 마련되려면 적어도 금감원 조사가 끝나는 4주 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대체로 윤종원 행장이 너무 소극적이라며 불만스러워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항의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다만 대책위 관계자들은 협상의 끈을 유지했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윤종원 행장이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의지를 갖고 자율 조정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금융업계 일각에선 기업은행과 대책위 모두 어쩔 수 없는 처지라는 의견이 나왔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대책위는 소비자로서 디스커버리 펀드 판매사인 기업은행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며 “문구점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샀는데 바퀴가 빠지면 환불받으려고 문구점을 가지 장난감 제조사를 방문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는 “기업은행 경영진이 지금 대책위가 원하는 수준의 보상을 약속하긴 힘들다”며 “펀드 손실 보상 관련 법률적 근거가 불명확해 자칫 잘못하면 경영진이 추후 배임 이슈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문제를 풀려면 경영진이 소비자 보호 목적으로 보상하는 것은 배임에 안 걸리도록 해줘야 한다”며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펀드 손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2015년 사모펀드 판매 규제 완화다.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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