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딴생각]

[청년칼럼=심규진]

생각이 난다 ♪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

  • 홍시 中 -

두 아이의 양육은 아내가, 돈은 내가 벌어오기로 합의한 뒤, 나는 매월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사투하고 있다. 그런데 육아 4년차가 되자 새로운 한계에 봉착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픽사베이

나훈아는 홍시라는 곡으로 엄마의 존재성에 대해 명확히 꼬집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자녀들 가슴 속에는 아빠 대신 엄마가 새겨져 있다. 홍시가 열리면, 맛있는 음식을 보면, 예쁜 옷을 보면, 아픈 날이면, 어김없이 엄마가 생각난다. 사실 나도 그렇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첫째, 기본적으로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가장 확실한 것은 ‘함께 하는 시간’이다. 집에서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지게 되는 엄마들은 (특히 옛날에는 99% 엄마였을 것이다) 아이들과 많이 교감할 수밖에 없다. 밥 먹을 때, 오줌 쌀 때, 약 먹을 때, 그리고 신나게 놀 때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다.

둘째, 아이들은 엄마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보기 때문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결실이 아기이지만, 그 아기는 아빠가 아닌 엄마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들은 이미 엄마와 열 달 동안 한 몸으로 생활했기에 그들의 관계는 아빠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일반적으로 밖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사회적 성공에, 안에서 육아하는 사람은 아이들의 성장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안과 밖의 역할을 성별로 구분할 수 없지만 나는 ‘밖’의 역할을 맡았기에 사회적 성공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성공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승진을 위해 알랑방귀를 뀌다보면 아이들의 삶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나의 하루 일과를 어딘가에 하소연할 수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 질 뿐이다.

지금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해본 것은 ‘엄마’라는 존재가 위대하고 부럽기 때문이다. 감히 남자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엄마라는 존재’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엄마를 향한 동경을 멈출 수 없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 그리고 울 아빠까지 생각나는 그 날을 기대하며 아이들의 발을 쓰다듬어 본다.

‘아빠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마워, 하늘아, 하은아’

 심규진

 퇴근 후 글을 씁니다 

 여전히 대학을 맴돌며 공부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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