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너의 9월은 나의 3월』시집에 대하여

[청년칼럼=서은송]

 욕 조는 비어 있음으로 유지된다 그건 나의 관점이지만

                                        「을의 독백」 부분

구현우의 시를 주체적으로 이끄는 화자는 삶의 주체에서 결여되어 있다. 정해져 있는 시간 속에서 조절할 수 없는 분리와 단절을 조절하고 그것을 슬픔으로 조율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기억을 되짚어가며 누군가의 부재를 참으로도 녹녹하게 풀어쓰는 시가 시집의 주된 요소이다. 그렇다 보니, 과거형으로 이뤄져 있는 시들이 유독 넘치게 외롭다.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되짚어가고 있었다 아쿠아리움에 갔을 때 너는 색색의 물고기들이  무섭다고 말했지 불가사리 정도는 잠깐 예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당신은 이별을 모르면서 이별할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더는 사랑이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묻지 않았다 당신의 기억 안에 당신은 없었으므로

                                            「적」 전문

픽사베이

고독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에 대하여 시인은 반드시 알고 있다. 하지만, 구현우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반응하여 표현하는 방식을 가장 근본적인 시의 형태로 드러낸다. 사랑해왔던, 사랑하는, 앞으로 사랑해갈 모든 것과 분리되는 과정을 통하여 그 속에서 일어나는 화자의 소외감을 놀랍게도 이성적으로 드러낸다. ‘이성적이다.’라는 말에 대하여 누군가는 의문을 품으리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시는 감성적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도가 트였다. 하지만 필자는 정말로 좋은 시란 ‘이성적인 시’라고 생각한다. 아픔과 고독을 그저 감성적으로 풀어쓴다는 것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예쁜 문장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구현우를 이성적이라고 말을 하는 데는 독자가 받아들이는 접촉에 따라 달려있다. 흔히 ‘흐느끼는 시’. 시인의 실연과 고독과 소외감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같이 울어달라 엉엉 대는 시를 한 번쯤은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울지도 않았는데, 시인이 앞서가서 울고 있다. 필자는 이것을 ‘감성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상호작용을 통하여 공감과 감성을 공유하고 시와 시인과 독자가 서로 접촉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항상 혼자 슬픔에 흥분되어 있는 시와는 달리 구현우는 차원이 다르다.

구현우의 모든 것은 끝나진 후에 한걸음 뒤에 서서 자신의 슬픔에 대하여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절대로 자신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도, 시 속에서 부풀리지도 않은 채 놀라울 정도로 이뤄진 상황과 떨어진 거리에서 “난 이렇더라. 너는 그렇더라.”라는 문장의 구조로 시적 분위기를 이끈다.

그렇다 보니, 구현우의 시에서는 순간에 가까운 모든 시간들도 초 단위로 문장이 이뤄진다. 이러한 시차적 감각들이 독자들에게는 차원적인 신비로운 감정을 선물하기도 한다. 또한, 그 찰나에 이뤄진 고독에 대하여 구현우는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그렇게 각자마다의 생각으로 이 시를 해석할 수 있어 시적 공감도는 더욱이 향상된다.

당신에게 들리도록 혼잣말을 한다. 물결에는 영원이 있다. 그 물결에 익사하는 어류가 있다. 젖은 발이 마르기엔 이른 시간이다. 그런 우울은 증상이 아니라 일상이어서 많은 결심이 자정을 넘기지 못한다.

                        「이토록 유약하고 아름다운 거짓」 부분

‘그런 우울은 증상이 아니라 일상이어서…’, 구현우의 시는 유난히도 더욱이 아프다. 덤덤하게 이어나가는 시적 문장 자체가 그 슬픔을 눅눅하게 만들어버린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감정이 담긴 시들이 존재하지만, 슬픔을 이야기하는 그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는 사실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시인의 고독을 이야기하는 시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유도하거나 우울을 나열하는 시로 이뤄진다. 하지만, 구현우는 자신이 겪고, 겪어나가는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 마냥 슬픔에 국한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 더 큰 어른이 자신의 우울에 대하여 덤덤하게 풀어냄으로써 나의 우울이 해결되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구현우의 시를 ‘식은 호떡’ 같다고 말하고 싶다. 따듯했던 시절 많은 꿀과 단맛을 품고 말랑말랑한 살결을 가졌던 자아가 시간이 흐른 뒤에 딱딱하게 굳어, 말랑했던 과거의 자신이 존재했던 것에 대하여 말하지만, 이미 다 식어버린 뒤에 느껴지는 식은 단맛. 그래서 필자는 이 시집이 참 좋다. 외롭지만 따듯하고, 마냥 녹아들기에는 차갑다. 시인의 감정에 내 감정을 무리해서 넣지 않아도 되고, 굳이 축축하게 슬픔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구현우는 이렇듯 선을 넘지 않는다. 좋은 감정과 나쁜 기억이 동시에 퍼진다. 식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감정은 살찌고 구운 슬픔의 향이 이 시의 곳곳에 녹녹하게 녹아든다. 나는 구현우의 슬픔을 고즈넉하게 들으며 애도하지 않음으로써 애도하려 한다.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서은송

 제1대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한양대  국어국문학 석사과정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 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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